<늘푸른나무/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

외국인이 본 청일전쟁, -1890년대의 풍운

외세에 고통받는 은둔국 조선 1890년대로 접어들었을 때만 해도 조선은 밀폐되어 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았다. 1894년까지 조선의 공물과 함께 하정사(賀正使)를 받던 중국만 하더도 조선 인민의 내면 생활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별로 알지 못하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조선은 완전히 외따로 있었으며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자력으로 생존해 왔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은둔국으로 존족하기에 적합했던 만큼 조약을 체결하려던 나라들 틈에 낀 후로는 과격한 선동에 휘말려 들어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

지난 1천 여년 동안의 조선 역사에서 현재처럼 어마어마한 세력이 조선의 오래된 관습을 위협한 적은 없었다. 3백여 년 전 일본과의 전쟁(임진란을 말함)은 조선으로 하여금 많은 숫자의 인명을 잃게하여 , 조선의 인재가 하마터면 거의 다 사라질뻔 하였고 많은 고적들을 파괴하여 예술과 제품들을 잃게하였다. 그러나 적이 물러가자 조선은 다소 부흥하여 명맥을 유지했다. 백여 년 후, 만주의 세력이 침입하여 (병자호란을 지칭함) 서울을 차지하고 , 조선은 겨우 국토의 일부분만을 지켰다. 그래도 조선은 그런대로 명백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개항(開港)은 늙은 조선에 대해 조종(弔鐘)을 울렸다. 그 문호를 통해서 들이닥친 외세는, 결코 물러설 줄을 모르는 적이다. 그래서 은둔국이기를 고집하던 조선은, 그 고집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의 상황은 조선의 독자적인 생활 수단뿐만 아니라 사회제도를 파괴하려고 위협하고 있다. 기독교가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별수없이 미신, 불가지론 및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고 말것이다.

청일전쟁

조선이 서구화하기 시작한 때에는 참으로 끔찍한 악몽을 겪었는데, 그것은 동학란으로 시작돼서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왕비가 시해당할 때(1895년)에 끝났다. 왕비가 국제 친선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의문을 느낀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동학란이 , 중국과의 전쟁을 촉진시키고 싶어한 외부세력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조선은 독립하려는 의욕을 갖고있지 않았다. 조선은 어린애가 부모를 존경할 때와 같은 태도로 중국을 존경했다. 그런데 이 부모는 어린애가 제 힘으로 제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게 내버려 두었으므로 , 부모와 자식간에 인연을 끊는다고 하는 부당한 일이 생겨난 것이다. 조선은 사실상 중국한테서 인정 받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었다. 중국은 조선인이 생각하는 우주의 영예로운 중심이었던 것이다. ‘조선에 자유를!” 어쩌구 하는 슬로건은 동양에서 있을 수 없는 의견이든가 궤계의 하나로서, 경솔한 서양인을 쫓아버리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그런 외침은 어미닭이 제 새끼들을 너무 심하게 깔고 앉을까 봐 걱정한 끝에 병아리들을 그 속박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닭장을 불시에 습격하는 여우를 연상하게 한다.

청일전쟁의 참화는 북조선을 휩쓸었다. 평양은 황폐해졌다. 주위의 전원은 황무지로 변했고 전쟁터에서 풍긴 악취에 오염되었다. 마지막에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갔고, 국민은 일본인이 지시한 대로 새로이 조직된 정권의 지배하에 놓였다.

(중략)

1894년이란 해는 조선에는 특별히 암담한 해였다. 1월에는 사방에서 동학도가 봉기하여 단지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만이 나돌았다. 동학도들은 한울님(天主)을 숭배하는 교도들인 동시에 학살자들이었다. 그들은 영약을 먹고, 한번 힐끗 보는 것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들은 총탄이란 것이 자기네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동학도들에 대한 이런 얘기를 얼마든지 들었다. 정부에서는 부패나 그밖의 다른 무서운 마비 상태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관리들은 노략질을 일삼았고, 왕의 권위는 발 아래 짓밟혔다. 왕은 손을 뻗어서 대국(淸帝國)에 도움을 간청했다. 대국은 망나니의 떼를 몰고 왔는데, 동학교도의 숫자는 계절이 바뀌면서 부쩍 증가되어 있었다. 중국이 그럭저럭 여러곳의 소동을 진압하는 동안에 일본이 개입해서 두 나라는 선전포고를 했다.

일본의 본성과 잔혹행위

그때에 나는 원산의 동쪽 해안에 집 한채를 짓느라고 중국인들 20여명 가량 고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국이 불과 두어 달이면 ‘해 뜨는 왕국’을 휩쓸 것이며 얼마 안 남은 왜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7월 25일 왜인은 1천 2백여 병력을 태운 코우싱 전함을 격침시켰다. 왜인은 그 배를 보고 즉각 포격을 가했던 것이다. 수송선 코오싱은 공격을 받자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닻을 내렸다. 일본인 장교 한명이 그 배에 올라가, 전쟁포로로 다루겠다고 중국인들한테 선언했다. 그들은 일본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버티었으며, 영국인 선장이 배에서 내리라고 으르렁거렸을 때는 가만히 있지 않으면 쏴죽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니와함은 갑판을 정리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일어났고 코우싱호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화물과 민족을 위해 싸우는 장병들과 함께 물속 깊이 가라앉았다.

이 가련한 자들에게 일본군이 사격을 가했다는 것은 권위있는 소식통에서 나온 이야기다. 일본인이 최근의 전투에서 이런 행동들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을 만큼 원래 앙칼진 야만인이란 것은 정말로 사실일까. 코우싱의 격침, 포오트아더(만주의 여순항)의 대학살, 조선 왕비의 죽음 등, 우리는 일본이 잘하기를 바라지만 어떤 군사지뤼자나 외교관도 끊임없이 이런 잔학한 행위를 자행하고, 성공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위에 언급한 원산 앞바다의 해전중에 일본군은 영국인 장교들을 자신들의 배로 구출하였지만 중국인들은 아우성치며 익사했고 바다는 다시 고요하고 평온하게 되었다. 나흘 후 일본은 훈련이 잘된 서구식 군대를 아산만 쪽으로 투입하였다.

도주하는 청군은 강원, 황해, 평안 등 3도를 거쳐서 평양으로들 갔다.도중에 그들은 어디에나 공포를 만연시켰다. 조선여자들은 산속으로 도망쳤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던 노인들은 천자의 나라에서 온 날강도떼들이 약탈을 임삼는다고 울부짖었다. 확실히 두 나라의 군대가 행군하는 모습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일본군은 어디서나 지불할 것은 지불하고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해 주었다. 평양으로 들이 닥친 청군은 조 장군의 병력과 합류해서 들끓었다. 어느 조선인의 말에 의하면 조 장군은 청군에게 매일 돼지 200 마리를 잡아주었다고 한다.

그동안에 일본 병력이 원산에 상륙했다. 맑게 갠 8월의 일요일 아침에 우리들은 예배당에 모여 있었다. 대여섯 척의 수송선이 수평선 위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기려나 하고 몹시 궁금해 하던 주민들은 사방의 산 위로 올라가서 그 군함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무슨 무시무시한 짐을 싣고 왔는지 알고 싶어 했다. 정오가 채 안되었을 때 푸른 제복을 입고 배낭과 총을 멘 몸집이 작은 병정들이 바닷가 산에 꽉 들어찼다. 내가 고용하고 있던 23명의 중국인들은 전쟁의 신에게 걸었던 모든 희망을 잃었다. 겁을 먹고 벌벌 떨면서 이들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울부짖었다. “저 좀 살려줍쇼! 아이구, 저좀 살려 줍쇼!”

일본인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의 친구 이씨는 밖에 나가서 몇몇 일본인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영국과도 마음만 내키기만 하면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일찌기 어느 현인은 “위대한 사람은 평화를, 소인배는 협잡을, 여자는 전쟁을 낳는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그들의 여자와 소인배들로 유명하다. 사실이지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으뜸가는 소인배들이다.

이틀 후에 군대는 185마일 떨어진 서울을 향해 출항했다.

그로부터 한달 동안 원산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살해당할 뻔 했던 중국인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나의 집을 짓던 중국인들은 도망쳐 버리고 벽돌, 모르타르, 재목 따위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때 매일 들려오는 소식은 적(청군)이 가까이 있다는 것과 죽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중대한 위기였다. 청나라 야만인들이 들어오면 그들의 손에서 아내를 비롯해 온 가족이 무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사용 가능한 무기들을 구했다. 하인들과 이웃 주민들은 “나으리, 싸움이 벌어지면 쉰네는 나으리와 함께 싸우겠습니다”고 하였다. 비록 무력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며칠 후 러시아의 선박 한 척이 들르자 몇몇 선교사들은 이 배를 타고 떠났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남편이 떠나지 않는한 혼자 떠날 수는 없다고 승선을 거절했다.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선교사의 잔류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떠날 수가 없었다. 날이 감에 따라서 불안은 더해졌다. 중국인 선발대 척후가 우리들을 정탐하기 위해서 바로 항구에까지 내려왔다. 어느 무더운 여름밤에 우리는 사면이 툭 터진 베란다에 모여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땅위로 걸어다니는 병정들의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아니면 바다에 써치라이트가 비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날 아침 폭음이 들려 왔었다. 불덩이 하나가 북쪽 하늘에서 치솟더니 항구의 중심가로 날아와 터졌던 것이다. 주민들이 공포에 차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다쪽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희미한 빛줄기 하나가 비치는 이 보였다. 그것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조선어부가 그 불을 켠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거기에 약 반 시간 가량 더 비치고 있었는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남동쪽으로 움직여 중국의 함대가 늘 정박해 있던 곳을 향했다. 그제서야 우리들은 배 1척이 입항했다는 것을, 그 불빛의 빠른 움직임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중국의 군함이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서 들이닥친 것이라면 우리들은 포화 사이에 놓인 셈인가, 아니면 저것은 일본의 군함인가, 항도의 불빛은 다 사라지고 사람들은 기다렸다. 그것은 1천 여 명의 병력을 태운 일본의 수송선이었다.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당시 우리는 일본군의 품안에서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구의 군대에 비해 술을 덜 마시고 무척 질서가 잡혀 있었다. 10중 9는 제법 개화된 국가의 병사답게 처신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들은 겉모양만 보기 좋은 표범의 오랜 근성을 들어내곤 하였다.

도합 1만명 가량의 병력이 수송선 편으로 계속해서 도착하더니 평양을 향해 서쪽으로 이동했다. 며칠 후 평양은 함락되고, 청군의 전사자들은 길에 그대로 깔려있었다.

일본군들은 전투병력 이외에도 군의관들과 간호부들을 넉넉히 확보하고 있었으며 식량보급을 위해서도 항상 공급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교량, 연료, 쌀, 쇠고기, 간장 등을 가지고 다녔다. 병정들은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느 나라의 병정들에 못지 않게 훌륭하게 장비되어 있었다. 평양 함락이후 압록강 어귀, 만주, 여순 그리고 나중에 위화도에서까지 일본군은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그들이 압록강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는지를 어느 영국인 대위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일본인들의 작전은 분명히 다른 어느 나라의 해군보다도 더 훌륭합니다”라고 하였다.

정말로 놀라운 점은 소인배들이 서구의 큰 총과 잘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세계는 중국이 취약하고 어린애처럼 나약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용감하게 싸웠지만 패장으로 북경에서 참수형을 면치 못할것이라는 수치 때문에 당시 청의 북양함대사령관 팅 제독은 자살하고 말았다. 어뢰정을 지휘했던 함장 초이 역시 처형자 명단에 올라있었다.

청일전쟁 이후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왕은 부득이 (중국으로부터의)독립을 선포했다. 원래 왕은 중국 또는 대국이라고 부르는 중국으로부터 그렇게 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왜(오랑캐)국이라고 부르던 일본의 압력에 어쩔 수 없었으며 그들이 주도하는 개혁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 넓은 옷을 벗어버리고 , 긴 담뱃대를 치워라.' 그들은 검은 옷을 입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조선에는 검은 물감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입을 검은 옷은 일본에서 실어와 주민들에게 배부되었다. 조선사람들은 일본인들을 전보다 더 증오하게되었다. 조선의 현재 여러가지 과제들을 처리하기에는 일본이 부적당하다는 것이 다시 드러난 셈이다. 이런 동요상태는 1895년 3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