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개화기 조선/2014년 5월>

서양인들이 본 개화기 조선과 조선인들

지난 1월부터 '서양인들이 본 조선과 조선인들'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이조말 특히 개화기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직, 간접으로 조선의 개화에 일조를 하면서 남긴 기록들을 찾아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번역, 출판된 것들은 가능한한 그대로 소개하려 합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지음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는 1851년 미국 뉴욕주의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시카고 여자 의과 대학 재학 시절 장로교 선교위원회의 요청으로 1888년 조선에 왔다.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명성황후 민씨의 시의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서양병원인 광혜원의 부인과 책임자로 일했다.

1889년 이미 조선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서울에서 결혼하여 신혼여행과 선교여행을 겸해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등을 순회했고, 이듬해에는 아들 원한경을 낳았다.

그는 서른 해가 넘도록 격동기의 조선땅에 살면서 기독교 선교 활동뿐 아니라 의료 사업과 교육 사업, 사회 사업 등에 전력했다.

조선에서의 체험을 담은 이 책 외에도 <조선에서의 토미 톰킨스와 함께>, <조선의 언더우드> 등의 저서들이 있다.

1921년 서울에서 사망하여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하나님이냐, 여호와냐, 상제냐?(선교사업의 어려움)

궁전의 잔치와 여흥

1889년 초가을에 나는 몇몇 외국 관리 부부와 함게 대궐의 초대를 받았다. 접견이 끝난 뒤에 만찬이 있었고, 그 뒤에는 춤 공연이 있었다. 나는 대궐의 이런 여흥에서 기생들을 여러 번 보았지만 그때만큼 그들의 동작이 어설프고 품위없어 보인 적은 없었다. 손에 손을 잡고 둥그렇게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갖가지 어여쁜 모습을 보이는 그들의 움직임은 아주 우아하고 대체로 느릿느릿했다. 그들은 긴 치마에 목까지 올라오는 소매가 긴 웃옷을 입고 있어서 그 형태에 따라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곤 했다. 낯선 사람 앞에 얼굴을 보인다는 것은, 조선사람의 처지에서는 엄청나게 막가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 소녀들은, 아! 아! 여자로서 타락할 수 있는데까지 타락해 있다. 방방곡곡의 그런 계층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자들도 가련하고 희망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타락해 버린 여자들과는 달리 이들에겐 동정을 했으면 했지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이 불쌍한 소녀들은 자기 부모들 때문에 팔려 와서 이런 끔찍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자기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조선에는 겨우 쌀 몇 부대 때문에 종으로 팔리는 불쌍한 어린애들도 숱하게 많다. 그들은 기생이 될 훈련을 받기도 하고 잔심부름꾼이 되기도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남자와 혼인을 하기도 한다. 유치원에서 인형을 가지고 노는 우리나라의 아이들보다 별로 더 많지도 않은 나이에 말이다.

그러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대궐의 그 여흥얘기를 하자. 손님들은 잔치 차례앞에 있는 노대 또는 마루라고 하는 곳에 앉았고 그 앞의 마당에 큰 돛이 달린 어여쁜 배 한 채가 나타났는데 그 배에는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때에 대체로 메뉴에트 풍과 비슷한 아주 장엄한 민속음악에 맞추어 옷소매와 깃발을 펄럭이면서 기생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람을 나타내는게 분명했고, 배는 훈훈한 산들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이 점점 빨라지면서 기생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으며 그들이 소매와 치마와 수건으로 돛을 재빨리 부치자 마침내 배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더니 그 안에 탄 사람들과 함께 눈 밖으로 사라졌다. 배가 그렇게 우아하게 사라져 버리자 거대한 연꽃 한 쌍이 나타났다.

그 다음에 큰 황새 한 쌍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진짜 황새가 아니라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사람 황새였다. 그 새들은 음악에 맞추어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갔다가 옆으로 돌기도 하고 , 점잔을 빼기도 하고, 긴 목과 부리를 길게 길게 빼기도 하는 것이 ,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무슨 목적을 마음에 두고 있는게 분명하나 이리저리 망설이고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주저한 끝에 마침내 그중 한 마리가 용기를 내어 이제 막 피어나려하는 연곷 봉오리를 힘차게 쪼았다. 그러자 거기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귀여운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다른 황새 한 마리도 운 좋게 또 다른 연꽃 을 발견하였다. 나는 수 백년 동안 내려온 이 황새와 어린애의 신화를 여기 조선에서 보고 무척 흥미를 느꼈다. 동양의 오래된 나라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머나먼 과거의 끝없는 심연 속에 빠져있지만 , 한편으로 뭔지 새로운?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조선인

그해 11월 말에 우리는 언더우드 씨가 쓴 문법책과 사전을 출판하려고 일본에 갔다. 서울에서는 그런 책을 인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우리는 활자를 만드는동안 기다려야 했고, 이 사이에 문법책의 첫 부분을 좀 더 보완해서 끝냈다. 우리는 조선 선비를 한 사람 데리고 갔는데, 그는 일본이라든지 일본식이라든지 하는 것을 어찌나 싫어하든지 기선이 떠날 때마다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붙드느라고 몹시 애를 먹었다.

중국과 조선 그리고 일본에서도 주식은 쌀이지만 요리하는 방법이나 먹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또 어지간히 다급한 때가 아니면 이 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만든 밥은 절대로 먹으려 들지 않는다. 우리 선비는 ‘양반’으로서 여태껏 손에 흙 한번 묻혀 본 일이 없고, 요리를 해 본 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 그러나 일본의 한 여관에서 내내 투덜거리면서? 얼마를 견디더니 마침내 자기한테 방을 하나 얻어주고 혼자서 살림을 하도록 해 달라고 애원했다. 양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심한 어려움에 빠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의 요구르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그는 그 점잖은 손으로 손수 밥을 지었다. 그는 한문에 아주 조예가 깊은 학자였고 그의 학문은 일본의 고위층에서 크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종종 초대를 받아 나가곤 했는데, 그도시의 시장저택에 초대를 받아 아주 유명해졌다.

대체로 조선사람들은 어떤 잔치에 갔다하면 그 자리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어 치운다고 봐야 한다.(게다가 옷소매 속이나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기득 음식을 넣고 간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그들은 잔칫날 잔뜩 먹으려고 며칠 전부터 미리 굶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느 대체로 그들은 질보다는 양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선비가 방문했던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의 말이 믿을만한 것이라면 , 일본사람들은 미적인 감각만을 고도로 계발시켰으되 손님에게 손바닥만한? 잔 몇 개와 근사한 접시들을 늘어놓고? 음식이라고는 쥐꼬리만큼 내어놓는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 잔칫날 먹을 음식들 곧 쌀밥이며, 국이며, 뜨거운 떡이며, 땅콩이며, 과일이며 바싹 구운 신선한 과자며, 매운 양념을 잔뜩 친 고기며, 김치 다위를 기대하면서 굶고 있던 이 가련한 조선 사람은 참으로 비통해 할 수 밖에 없다. 아, 잔칫날은 돌아왔건만 , 현미경으로나 보일 찻잔 몇 개, 조선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음식(그중엔 틀림없이 생선회가 있었을 것이다.) 몇 점이 놓인 손바닥만한 접시 볓 개, 그리고 나머지는 이성과 영혼의 잔치였으니! 다음날 총명하기 이를떼 없는 , 빼빼한 이 사람은 언더우드 씨에게 서글픈 목소리로 조선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 지는데 일본 사람들은 어째서 잘 사는지 그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사람들은” 하더니 “하루에 백 원을 벌면 찬 원어치를 먹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반대로 하루에 천 원을 벌어 백 원어치를 먹습니다.”하고 말했다. 적어도 일본사람에 대해 이보다 더 옳은 말은 여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원수라도 부인하지 못할 미덕이 일본사람들에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기술과 검소함일 터이다.

일본에서 한 달에 몇 번씩 약한 지진이 일어나는지 그 정확한 수효는 모르나 여섯 달을 머무는 동안 줄잡아서 사흘에 한 번은 지진이 있었다. 한번은 하루 스물 네시간 동안 열한 번이나 일어났다. 물론 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문이 흔들리고 천장의 등이 덜렁거리고 흔들의자가 움직일 정도였으니 집이 당장 무너지는가 보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다시 조선으로

1890년 4월 26일에 책의 출판이 끝나자 우리는 바로 조선으로 떠나 5월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 곧 네비우스 박사 내외가 우리를 찾아 왔다. 우리는 모두 네비우스 박사를 임금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분은 마음이 맑고 넓을 뿐만이 아니라 온화한 성격에 마음씨는 너그러웠으며 오랫동안 성실게 일해오신 경력이 있는 분이라 그분 가까이에? 앉을 수 있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젊은 선교사들은 엄청난 책임감에다 ,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격도 없고, 경험도 없다는 생각이 뒤얽혀 무척 당황하고 의기소침하게 된다. 그러한 절망을 스스로 이겨냐는 수밖에 없다. 그런 때에 나이 많은 형제의 충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것이다.

그때에 선교사가 몇 사람 도착하여 우리의 작은 선교회는 강화되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무척 더웠던 그해 여름 몇 달을 보내려고 남한산성으로 갔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여름에는 건강에 좋지 않은 곳이다. 썩은 물이 고인 시궁창과 도랑에서는 오물이 넘처흘러 악마가 빚어낸듯 온갖 질병이 메스꺼운 공기를 타고 뿜어져 나오고, 문명한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도저히 말로 할 수 없는 냄새가 난다.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17마일쯤 떨어진, 2천 피트가 채 안 되는 산꼭대기에 있다.? 앞쪽으로 한강이 흐르는 그 산은 구불구불 돌아 올라가는 질척거리는 길로 가야 한다.

헤론 박사의 죽음과 양화진 외국인 묘지

헤론 박사는 거기에 자기 가족들을 데려다 놓고 서울에 일을 보러 왔다 갔다 했으니 그 덥고 눅눅한 계절에 꽤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금새 이질에 걸리고 말았는데, 처음에는 그리 심한 것 같지가 않아 오랫동안 병에 걸린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아주 악성으로 번져 스크랜턴 박사와 맥길 박사 같은 의사들이 꾸준히 애를 썼는데도 자꾸 나빠지기만 했다. 마침내 증세가 심상치 않게 되었고 그래서 곧 헤론 부인을 집으로 보내게 되었다. 엄청나게 당황하고 놀란 부인은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바람이 부는데도? 그날 저녁에 바로 길을 떠났다.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횃불이나 등불은 도무지 불을 붙일수가 없었도, 바람은 가마 주위에 미친듯이 불어닥쳐 가마꾼들의 손에서 가마를 빼았아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다. 날씨가 좋은 때에도 질퍽거리고 걷기 힘든 길이 진흙과 물로 미끈거리니 정말로 위험했고, 너무나 어두워서 한치 앞도볼 수가 없었다. 숲속이나 계곡에서는 가마꾼들이 가슴께까지 물에 잠기기도 했다.

가련한 젊은 부인은 이 끔찍한 폭풍우 속에 밤새 시달리며 여행을 한 끝에 온몸이 흠뻑 젖어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하여 남편이 매우 위중한 것을 보게 되었다. 세 주일 남짓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 끝에 헤론 박사는 세상을 떠났다. 외국인 사회뿐만이 아니라 그가 사귀어 온 많은 조선사람들 그리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친절한 마음씨를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커다란 슬픔이었고 손실이었다.

조약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그랬어야 했는데도 조선정부는 서울 근처에 외국인이 묻힐 묘지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오랜 미신과 엄중한 법률로 도성 안에 송장을 묻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조선에서 죽은 유럽인 몇은 제물포 근처의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그 뜨거운 7월에 탈 것이라곤 가마밖에 없는 형편에서 30마일이나 떨어진 그 항구까지 송장을 운반해야 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마음이 쓰리고 아픈데 거기다 또 다른 시련을 더하는 셈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헤론 박사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을 때에 우리는 곧 조선정부에 이런 일에 쓸만한 장소를 서울 가까이에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무엇이든 질질 끄는버릇대로 이 일도 질질 끌다가 마침내 우리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헤론 박사가 죽던 날 그들은 한 장소를 내놓았는데, 그곳은 강 건너 모래밭을 지나 아주 먼 곳의 나지막한 땅으로서 도무지 쓸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 급한대로 임시 방편을 써야겠다고 결정을 하고 우리 선교회 땅 한쪽에다 임시로 무덤을 쓰기로 했다. 그때에 그곳에는 언더우드 씨와 헤론 박사의 사전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조수들이 사는 조그마한 집이 있었다. 그들은 이 계획을 듣자마자 드세게 반대를 했다. 그것은 법을 어기는 일이며, 송장을 거리를 지나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면 엄청난 소동과 말썽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 외부에다, 조선 정부가 다른 장소를 마련해 주지 않았으므로. 할 수 없이 임시로라도 이렇게 하는 수밖엔 없다는 말을 전하고, 헤론 박사가 살던 집 뒤에 무덤을 파도록 했다. 장례는 세시 정각에 시작되었는데 30분도 채 안되어 사전 만드는 일을 돕던 조수들이 머리를 잡아 뜯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벌벌 떨며, 아무튼 공포에 질려 엄청나게 흥분하여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만일 송장을 집 안에 묻는다면 그 동네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집을 불태우고, 자기들을 두들겨패서 죽이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거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의 주검이 누울 수 있는 땅 조차도 찾을 수 없다니 참으로 너무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 가련한 우리 자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팟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이의 뼈를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묻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남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땅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이런 다툼과 혼란만이 닥쳐왔다. 우리는 그 선비라는 사람들에게 매우 화가 났다. 적어도 그들이라면 그런 미개한 미신따위는 뚸어넘어야 옳았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비밀을 지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제 헤론 박사의 뼈를 어디에 묻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썩지 않도록 처리를 하여 밀봉해 두었다. 그러나 우리가 집안에 그것을 묻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조선 외부에서는 당장에 굴복을 해서는 서울에서 5마일쯤 떨어진 강이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벼랑위의 넓은 땅을 내 주었다. 이것은 미국 공사관의 알렌 박사가 줄기차게 노력한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그는 조선 외부에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권리를 주장했다.

치료차 미국으로

그 몇 달 동안에 우리의 일은 조금씩 발전을 보였다. 신자와 예비신자의 수효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불어났고 , 감리교 선교회의 스크랜튼 박사와 언더우드 씨가 성서번역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교파는 다르지만 모두 기독교계통인 여자학교가 이미 오래전에 세워져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감리교는 그보다 훨씬 앞서 있었지만), 사내아이들을 수용하던 고아원은 학교로 바뀌었다. 두 교파의 병원과 약국은 우리의 우정과 신의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모두 번창하고 있었다.

초가을에 우리의 삶을 더욱더 가열케 해주는 새로운 선교사가 우리 가정에 나타났다. 덩치와 몸무게가 다소 형편없이 어울리지 않는 친구였기는 했지만 말이다.(언더우드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났음을 말한다) 이 일이 있은지 몇 달 뒤에 나는 병이 들어 점점 고치기가 어렵게 되어 가더니, 마침내의사가 목숨을 구하려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사회가 나에게 베불어 준 친절과 호의는 아루 다 적을 길이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돈을 벌려고 큰 도시들에 갖가지 시설들을 세운 것이 아니며 우리가 크게 의지하려는 것은 서로의 친절한 마음이었다. 이 동양 땅에서 우리는 영혼의 사랑과 봉사 정신으로 서로 굳게 맺어져 있었다.

나는 간호를 받았고, 친구들과 이웃들은 짐을 꾸리는 내 남편을 도와주었다. 한 해 동안 집을 비우려면 단단히 못질을 하고 자물쇄를 채우고 밀봉을 해서 곰팡이와 좀과 녹과 생쥐들 그리고 도둑을 막아야 했다. 가구들은 꼭꼭 묶어서 한쪽으로 가득 채워 넣어야 집 없는 다른 선교사들이 들어와 살 수있을 터였다. 사람들은 우리 아기와 나에게 옷을 만들어 주었고, 우리를 돕는 것을 조금도 괴로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벙커 부인과 헤일러 양은 제물포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가마꾼 여섯 명이 메는 아주 튼튼한 큰 가마를 타고 갔는데 도중에 한 고풍스런 일본식 여관에서 하룻밤을 무었다.

조선을 떠나면서 나는 슬프고 부끄럽고 괴롭기 그지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약속된 시간이 되었을 때에, 뭔가가 이루어졌을 때에 돌아가기를 크나큰 기쁨을 품고 기다렸었다. 그러나 ‘지금’ 간다는 것, ‘실패’를 안고 일은 거의 시작도 안 했는데 다시는 돌아 올지, 못할지도 모르면서 떠난다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더 쓰라렸던 일은 내가 남편을 끌고 간다는 생각이었다. 일꾼은 한심할 정도로 적은데 도움을 청하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드높은데, 그 땅에서 건강과 정열이 넘쳐흐르는 그가 등을 돌리게 한 것이다. 기독교 선전책자와 찬송가책도 필요했고, 성경은 아직 번역도 되지 않았으며, 사전은 절반도 완성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도 세워야 했고, 급격히 불어나는 기독교인들에게 양식을 주고 가르침을 주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불행의 낌새가 있을 때마다 그러하셨듯이 이번에도 축복을 내려 주셨다. 미국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선교사 몇 명을 새로 얻게 되었고 미국과 캐나다와 영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마음 속에 조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세로운 선교회가 세워졌다.

조선에 돌아오다

조선에 돌아와서는 우리 아기가 몹시 아파서 여름을 거의 제물포에서 보냈다. 우리는 중국인 남자들이 가득 찬 이른바 호텔에 묵었다. 그런곳에서 흔히 나는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 때문에 무덥고 기나긴 밤을 견디기 어려웠다. 초저녁부터 한밤중까지 길 건너 중국인 극장에서 배우들이 부르는 높은 가성의 노래 소리에 시달렸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군함으로 선원들이 돌아갈 때면 잠이 들면 무슨 큰 일이 닥치기라도 하는 줄 아는 개들이 미친듯이 줄기차게 짖어댔다. 개들이 잠잠해질 무렵이면 채소며 생선따위를 파는 일본인 행상들이, 아무튼 그 부지런함만큼은 높이 살 일이지만 , 내 창문 밑에 와서 빽빽거리는 목소리로 자기 물건을 사라고 외쳐 댔고 그러다 보면 마침내 새날이 밝아 일나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굶주린 내 아들을 안고 바다로 난 메마른 진흙 개펄 너머를 가슴 아프게 바라 보았다. 나는 기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기선은 우리아이가 삭일 수 있는 단 한가지 음식을 가져올 터이므로 그 기선이 너무 늦게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어린 목숨은 날이 갈수록 위태로워졌다. 그러나 마침내 배가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보석과 보물을 잔뜻 싣고 인도에서 돌아온 대선단이 받았던 환영도 내가 그 때에 했던 것에 견주면 절반도 안 될 것이다. 그 어떤 배가 싣고 온 소중한 것이라도 내게는 우리 아기의 건강과 목숨을 돌려준 그 물건의 값어치에 견주면 반 푼 어치도 안된다.

그 사이에 언더우드 씨는 집수리를 감독하느라고 서울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건축가에다 토건업자에다 목수에다 정원사에다 만물박사가 되어야 했다. 그런가하면? 그 여름 내내 이제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몹시 필요하게 된 찬송가책을 만드는 일에 쉴 새 없이 매달려 있었다.

선교사들의 골치거리, 신의 ‘호칭’ 문제

‘호칭’문제는 아직가지도 모든 선교사들이 확실하게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골칫거리이다. 이 문제는 ‘신’에 해당하는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것과 관계가 있다. 중국, 일본 그리고 조선에서는 대게 비슷하게 한자를 쓰고 또 ‘신’을 뜻하는 단어들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 있기는 하나 영어로 표기할 적에 ‘gods”에 정관사를 붙어 ‘The God’이라고 하거나 문자를 써서 “God’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글자가 없다. 또 조선에는 하늘에 있는 으뜸신(‘상제’ 또는 ‘하나님’)과 땅의 신(‘땅 님’) 그 밖에 다른 것을 뜻하는 ‘이름들’이 있다.

어떤 선교사들은 이 하늘의 으뜸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척 경배하는 그 신의 성격과 특징을 가르치고 설명을 한다면 그들이 훨씬 쉽게 이해하고 우리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그것이 오직 한 분 뿐인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이교도들은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가 하면 또 수 많은 다른 작은 우상들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이교도들의 우상을 가르키는 인격적인 이름을 영원한 여호와에 어떤식으로든 적용해서는 안 되며,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양심적으로 믿고 있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한 저마다의 신념은 제처 두더라도 선교사들은 그것이 하늘의 신이거나 땅의 신이거나 위대한 “나는 ….”이라는 말에 해당될 이름에 이교도 신들의 이름을 쓴다면 초창기 원주민 교회의 신도들의 마음에 위험한 혼돈이 생길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간단히 말해 틀린 사물은 결코 옳은 것이 될수 없고, 여호와를 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은 끝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일본에 있는 모든 교파의 선교사들 그리고 중국에 있는 소수 개신교파의 거개와 로마 카톨릭 전 전부 그리고 조선의 모든 성공회와 로마 캐톨릭에서 채택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신’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쓴다.

조선에 있는 감리교 선교사와 장로교 선교사의 거의 전부, 그리고 중국의 그 교파들은 또 다른 부류에 든다. 물론 중국의 선교사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조선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기는 하다. 중국의 선교사들은 ‘상제’라는 말을 쓰고 조선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슨 논쟁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사실 골치아픈 일이긴 하나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해결이 진정으로 기대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해 서로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속 깊이 간직한 원칙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여기서 꺼낸 것은 어떤 선교사업을 할 때에 부딫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땅에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무언가 가느다란 빛이라도 얻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그 모두가 어렵다.

우리가 조선에돌아온 직후에 제임스 게일씨의 문법책이 출판되었고, 또 한 해쯤 뒤에는 그가 쓴 한영사전도 출판되어서 이제는 언어학습을 돕는 책들이 몇 종류 생겼고 그걸 토대로 선교를 하게 되었다. 처음 도착한 선교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말을 익히라고 강조하였고, 시험을 세 번 치르도록 하였다. 일급, 이급, 삼급의 어학과정을 한해에 하나씩 마치도록 되어 있고, 새로 오는 선교사들의 어학 공부를 지도하고 도와 줄 조교와 시험위원회의 위원들,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임명되었다.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lillies Horton Underwood)의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디자인 이숲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