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이 본 개화기 조선과 조선인들

지난 1월부터 '서양인들이 본 조선과 조선인들'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이조말 특히 개화기에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직, 간접으로 조선의 개화에 일조를 하면서 남긴 기록들을 찾아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번역, 출판된 것들은 가능한한 그대로 소개하려 합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지음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는 1851년 미국 뉴욕주의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시카고 여자 의과 대학 재학 시절 장로교 선교위원회의 요청으로 1888년 조선에 왔다.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명성황후 민씨의 시의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서양병원인 광혜원의 부인과 책임자로 일했다.

1889년 이미 조선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서울에서 결혼하여 신혼여행과 선교여행을 겸해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등을 순회했고, 이듬해에는 아들 원한경을 낳았다.

그는 서른 해가 넘도록 격동기의 조선땅에 살면서 기독교 선교 활동뿐 아니라 의료 사업과 교육 사업, 사회 사업 등에 전력했다.

조선에서의 체험을 담은 이 책 외에도 <조선에서의 토미 톰킨스와 함께>, <조선의 언더우드> 등의 저서들이 있다.

1921년 서울에서 사망하여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1. 제물포와 서울의 인상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던 1888년 3월 어느 날 나는 제물포 항구에 내렸다. 나지막한 언덕의 헐벗고 뾰죽한 능선을 배경으로 펼쳐진 돌투성이의 해안으로 나는 눈길을 돌렸다. 단로움을 깰 나무 한 그루 없고 겨우 위안이 될 만한 것이라곤 군데군데 하얗게 덮인 눈뿐이었다. 모래밭 대신에 냄새 나고 끈적거리는 삭막한 개뻘이 해안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곳에는 선창이 없어 찬물때라도 배를 바로 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쪽배를 타고 해안으로 다가갔다. 그때 험상궂고 야릇하게 생긴 남자들이 이상한 말로 소리치면서 우리를 조사하려고 언덕에서 급히 내려왔다.

거칠고 검은 그들의 긴 머리털은 빗질을 하지 않아 엉망진창이었는데 더러는 한 가닥으로 땋아 내리기도 했으나 거의 머리 꼭대기에 되는대로 매듭을 묶어 놓았다. 목과 얼굴 언저리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들은 흉측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몽고족이었고 입고 있는 옷말고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으나 대체로 그들보다 키가 컸다. 그 사람들의 옷은 때 묻은 흰 빛깔로서 짧고 헐렁한 저고리와 길고 불룩한 바지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이옷은 한 달에 두 번꼴로도 갈아입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러 왔다. 내 사랑하는 조국의 ‘숲과 교회가 있는 언덕’ 대신에 내가 택한 곳이바로 이 나라였다. 내 가슴은 벅차 올랐다. 그리고 그 일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뜨거운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여기서 그날 아침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맨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들의 옷은 매우 가난한 사람들의 옷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물포는, 특히 3월에는 조선에서 아마도 가장 살벌하고 볼품 없는 곳일 거라는 이야기를 해야만 조선 땅과 조선 사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될 것이다. 제물포는 수도의 관문 구실을 하는 항구이기 때문에 여느 항구들이 대개 그렇드시 이곳에도 여러나라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만큼 수많은 선원들과 무역상인들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 장사치들의 초라한 집과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틑날 가마꾼 넷이 메는 가마를 타고 제물포에서 서울까지 28마일쯤 되는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 길이건만 길이 매우 나빴다. 그러나 지금은 두 시간 반쯤이면 닿을 수 있는 철도가 놓여 있다. 나는 기분 좋게 시골 마을을 보았다. 대체로 나무가 적었고 인구도 적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 짚으로 지붕을 인 지저분한 흙 오두막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일본의 서쪽에 있는 이 작은 나라, 북쪽 끝에 중국과 시베리아에 닿아 있고, 9만 평방마일쯤 되는 땅덩어리에 1천 4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며, 북쪽은 뉴욕 북부와, 남쪽 끝은 버지니아 남부와 견주어질만큼 기후가 다양한 이 작은 나라에 호기심을 느꼈다.

오후 네시 무렵에 우리는 서울 근처에 도착했다. 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담쟁이덩굴이 늘어진 아름다운 그 성벽은-커다란 돌로 쌓은 것인데-위대했던 이 나라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리고 그 뒤에도 몇 해 동안 이 성문은 아주 재미있는 관습에 따라 닫혔다. 몇 세기 동안 조선에서는 횃불로 신호를 하는 방법을 써왔는데, 그것으로 평화나 전쟁의 소식이 전보처럼 빠른 속도로 서울로 전해졌고, 또 횃불을 반복해서 올리는 수효나 그밖에 다른 방법으로 그것은 꽤 쓸 만한 암호가 되어 왔다. 성벽 안에 있는 남산 위에는 봉화대가 네 군데 있었는데 그것들은 저마다 맡은 구역이 있어서 자기 구역안의 소식들을 모았다. 날마다 해가 지자마자 네 봉화대의 밝은 불빛이 전하의 영토가 아무 탈이 없음을 알리면 그 전갈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 넷은 대궐에 들어가 깊이 절을 한 뒤에 북쪽에도, 남쪽에도, 동쪽에도 그리고 서쪽에도 아무 탈이 없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면 궁중의 악대가 화사한 가락을 울리고 이 음악이 들리면 도시 한가운데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는 커다란 종을 치도록 봉화를 올린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엄숙하고 은은하되 가슴을 파고드는 이 종소리가 울리면 무거운 성문들이 닫히고 빗장이 걸린다. 그리고 이튿날 첫 새벽에 문지기가 똑같은 종소리 신호를 받을 때까지 이 문은 열리지 않는다.

 

1900년대의 한성, 멀리 보이는 언덕위 건물이 새로 지은 명동성당

다행히 아직 닫히지 않은 이 성문을 들어서면서 우리는 지붕을 짚으로 잇거나 기와로 인 나지막한 흙집들이 양 쪽으로 늘어선 좁고 지저분한 거리를 보았다. 흔히 이 도시는 마치 거대한 버섯단지처럼 보인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조선에는 일층보다 높이 지은 집이 한 채도 없기 때문이다.

평민들은 가난하고 그들의 집은 아주 형편없어 초라한 미국사람의 집과 비슷하다. 그러나 런던이나 뉴욕의 극빈자들과 견주어 볼 때에 서울에는? 헐벗거나 꿂주린채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집마다 정돈이 썩 잘 되어 있고 집의 한 부분은 여자들이 차지한다. 그곳은 ‘안방’ 또는 내실이라고 하며 길거리에서 들여다보거나 대문에 들어서면서 들여다 보지 못하도록 반드시 발을 쳐 두었다. 어느 집에나 자그마한 뜰이 꼭 있는데 그곳도 여자들이 쓸 수 있도록 장막(담장이나 발이나 나무와 숲 같은 것으로)을 친 곳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거의 방 한 칸과 부엌으로 쓰이는 헛간 같은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집에는 거의가 창문은 아예 없고, 있다고 해도 겨우 손바닥만 한 것 하나뿐인데 창문이고 문이고 모두 유리 대신에 흰 종이를 발라 놓았다. 이 문들은 대개 아주 낮고 좁아서 키가 작은 여자라도 잔뜻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으며 방 안으로 들어가서도 한복판 곧 천장이 가장 높은 곳에서 말고는 똑바로 설 수가 없다. 이런 작은 방들은 방바닥 밑의 돌과 진흙을 섞어 만든 관 덕분에 금새 뜨뜻해진다. 집 한쪽 바닥에서 잔솔가지로 불을 지피면 맞은쪽에는 굴뚝이 뜷려 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연기와 열이 관으로 옮겨져서 방바닥이 아주 뜨거워지고 방 전체가 곧 훈훈해진다. 아궁이에는 쌀을 끓이는 솥을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아주 큰 이득을 얻는 셈이다. 곧 아궁이 하나로 요리도 하고 난방도 하는 것이다. 그럴만한 여유가 있는 집에는 반드시 남자들의 손님방인 ‘사랑방’이 있으며 그곳은 길거리나 남자 전용의 뜰로 열려 있다. 여기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가 있다. 남자 손님들은 여기서 대접을 받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한 집안 식구거나 친척이 아닌 사람은 절대로 안방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런 집들은 모두가 끔찍하게 비위생적이고 거의가 다 벼룩이나 이 같은 해충이 득실거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하수는 길 양쪽에 있는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더러운 시궁창으로 흐른다. 그 몇 해 동안 이런 형편을 개선하려고 애썼고 길도 잘 닦았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버려두었던 하수 도랑의 오물이 여름에 온 비에 쓸려 내려가 버렸으니 그 비가 이 도시를 살려준 셈이다.

참으로 놀랍게도 성문을 들어서서 이 지저분한 길거리를 지나자 갑자기 잔디와 꽃과 숲과 나무들이 가득한 그림처럼 아름다운 선교사의 집을 보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우리 선교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 전통가옥들이 예전에는 부자였지만 지금은 몰락하거나 쫓겨난 양반들의 집임을 알았다. 선교사들은 낡았다는 구실을 붙여 기가 막히게 싼 값으로 그 집들을 사들여 거의 돈을 안 들이고 수리를 하고는 내부를 약간 유럽적으로 꾸며 놓았다. 그 한 집을 나는 아주 기분 좋게 감상을 하면서 들어가 보았다. 천장에는 무게 있고 정취 있는 거무스름한 대들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벽은 아름답게 도배가 되어 있었으며 양탄자며 편안한 가구들 그리고 그림 몇 점과 장식품들이 꼭 제 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방들은 널찍했다. 그 방들은 옛 주인인 부자가 살던 곳이었는데 내가 앞에서 말한 그런 방들처럼 낮거나 어둡지가 않았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은지 한 네 해쯤 되었던 우리의 선교 사업에 대해 조선 정부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렌 벅사가, 나중에는 헤론 박사가 임금의 주치의로서 정부에서 세운 병원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엘리스 양은 나중에 혼인을 했지만 왕비의 의료 보조원이었고 병원의 부인과를 책임지고 있었다. 혼인을 한 뒤에 그는 이 두 직책에서 물러남으로써 내가 그 일들을 이어 받았다. 내가 만난 선교사들은 헤론 박사 부부, H.G.언더우드 목사 그리고 (그전에 엘리스 양이던) 벙커 부인이었다. 알렌 박사 부부는 공무로 미국에 돌아가고 없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병원에는 날마다 환자들이 밀어닥쳤다. 게다가 알렌 박사에게는 장차 약사와 의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료학교 일뿐만이 아니라 외국인과 조선인 환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언더우드 씨는 고아원과 학교를 세웠고 헤론 박사가 오기 전까지 병원에서 알렌 박사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갔을 때에는 고아원을 돌보는 일 말고도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의료 학교는 장차 세워질 의과대학의 주춧돌이 되어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언더우드 씨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서른 명쯤이 세례를 받았다. 그는 기독교를 알리는 작은 책자들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설교를 하느라고 내륙지방 깊숙이 또 북쪽 국경까지 오랫동안 여행을 했다. 언어소통을 위하여 쓸모 있는 방법들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마가 복음서’를 시험 삼아 번역하였다. 엘러스 양은 내가 도착할 때까지 여자 의료 책임자였으며 왕비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왕비는 그에게 높은 지위와 값비싼 선물을 주었다, 또 엘리스 양은 여학교의 첫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최초의 서양식 국립의료기관인 광혜원

나는 모든 분야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도착한 다음날로 통역 한 사람을 옆에 앉히고 일자리를 맡았다. 여기서는 일이 보통 세 시간쯤 늦어지곤 하였다. 에론 박사 부부가 참으로 친절하게도 나에게 햇빛이 잘 드는 방 한 칸을 내주었으므로 나는 그들과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헤론 박사와 함께 진료를 했는데 밀려드는 여자 환자들 때문에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때도 철도 개의치 않는 이런 환자들 때문에 내 어학 공부가 자꾸만 중단되곤 하는 것을 곧 깨달았다. 당연히 나는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나갔는데, 환자 한 명은 중국 관리 원공(원세게을 의미함. 그즈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람을 빼놓곤 이야기가 안 될 만큼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의 부인었다. 이 부인에게는 날마다 왕진을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격식을 차리느라고 나로서는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을 적잖이 빼앗겨야 했다.

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과중한 업무에 매여 있는 것을 알고 나는 어린 고아들에게 날마두 두 시간씩 셍본과 영어르 가르쳐 달라는 제의를 승락했다.
선생은 조선말을 모르고 학생들은 영어를 모르니까 학업의 진도는 말 할 수 없이 느렸고 허둥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교는 임금의 절대적인 호의를 입고 있었다. 주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보여주는 기관으로는 병원말고는 이 학교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죄악에 물들기 전에 이 학교에서 영혼을 구원받고 전도사와 목사가 될 준비를 갖추는 첫 발걸음을 내디디게 되기를 바랐다. 조선말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가장 큰 소망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이런 다른 일 때문에 크게 훼방을 받았다. 수백만 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 얼마 안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일을 하던 그런 상황이었으니 만큼, 우리는 그때에 몇 시간만이라도 어학 공부를 해 두는 것이 장차 몇 곱절 더 쓸모있는 일이 되리는 것을 깨닫비 못했다. 그래서 주로 공부하는데에 써야할 시간과 정력을 병원과 약국 그리고 학교에 쏟아 넣었다.

나는 몇 마디 조선말을 더듬거릴 수 있기도 전에 종교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일학교에서 어린 소년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는데 그것을 아직 조선말로 옮길 수는 없었으나 (소리는 알 수 있어서) 아이들이 외는 것을 제대로 들을 수는 있었다. 그 뒤에 곧 여자들 몇 명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 일은 전에 영어를 배운 적이 있는 어린 소년 하나와 한문으로 된 성경을 읽을 줄 아는 무당이었던 여자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되었다. 그 여자가 성경 한 토막을 읽고, 주기도문, 찬송가를 번역해서 읆조리면 우리는 모두 그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이 어린 통역의 중계로 여자들에게 말을 했다. 참 쩔쩔매고 더듬거렸으나 여자들은 잘 참아주었고 친절했다.

여기서 조선의 종교에 관해 좀 말해야겠다. 조선 사람에게는 유교, 불교, 도교가 다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옛날에 한때 크게 미치던 영향력은 잃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유교는 사람들에게 조상숭배를 엄격히 지키도록하는 율법적인 면에서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밖에는 그저 윤리적인 철학체계일 뿐이다. 조선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장 강하게 그리고 널리 퍼져있는 미신이 강요하는 관습이 무쇠족쇄보다도 더 단단히 그들을 얽어매고 있었다. 지극히 자잘한 절차에도 꼼꼼히 신경을 써서 조상을 섬기지 않으면 소홀한 대접을 받은 귀신들이 화가 나서 무시무시한 재앙을 내린다고 믿고 있었다. 이와같이 강요된 제사는 힘겹고 지긋지긋한 것이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며, 다른 교리를 믿고 그 의식을 지키지 않는 이단자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것이다. 이 신성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남자거나 여자거나 가정과 친구를 배신한 것보다 더 심한 대접을 받는다. 불교는 지위가 떨어져서 최근까지도 중은 도성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들의 계급은 이 나라에서 가장 천민인 백정 다음이었다.

불교의 절 몇 곳은 정부의 비용이나 기부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무식한 사람들이 아직도 얼마쯤 불교를 믿고 있었다. 이런 계층의 사람들은 또 온갖 사악한 귀신들 곧 땅과 하늘과 바다에 들끓는 귀신들, 여러가지 질병의 귀신들, 무슨 일에든 끼어드는 귀신들을 섬기고 두려워한다. 이 귀신들에게는 악마에게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왜우고 제물을 바치고 북들 두드리고 종을 울리고 그 밖에 낱낱이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의식들을 올려서 그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보다 그들이 더 믿는 것은 하늘인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하늘을 의인화한 것으로서 나는 그것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알’(고대 셈속의 태양신)과 같은 것임을 그 즈음에 깨달았다. 어디에서든, 이런 낡은 미신속에서도 의지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하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더욱더 커진다. 오로지 옛날의 관습과 주위의 여론 때문에 의식적인 체면치례를 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그즈음에 우리 앞에 놓인 일들은 참으로 절망적으로 보였다. 감리교 형제들을 포함한 몇 십명도 채 안되는 작은 조직으로 우리들 가운데 많은 수효가 아직도 겨우 더듬거리는 몇 마디 조선말로 1천 4백만이 넘는 인구가 있는 나라에서. 또 자기들의 오랜 종교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 기독교를 전파해야 했고, 그것도 가난한 농부들이나 늙은 여자들에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종교의 거룩한 본질 속에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이미 성공의 요소들이, 승리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지 며칠 뒤에 왕비의 심부름꾼들이 내게 와서 환영의 인사를 전하고 여행은 즐거웠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곧 이어 헤론 부인이 나인들에게 점심을 함께 하자고 청했다. 이 여자들은 다른 나라의 궁중에서도 그렇듯이 지위가 높은 여자들은 아니었다. 조선의 관습으로는 그런 여자들은 결코 궁중에서 남의 눈을 끌 수가 없다. 중산층이나 천민들 가운데에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들을 궁중으로 데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격리시켜 놓고 오로지 봉사만 시킬뿐이다. 그들은 아무 지위도 없고 대체로 자기가 받드는 왕족과의 관계에 따라서 대접을 받는다. 그들은 공식행사때에는 언제나 어마어마하게 큰 가발을 쓰는데 그 모습은 참으로 괴상하다. 분과 향수를 잔뜩 바르고 눈썹을 짙게 그리고 금박이 찍혀 뻔쩍거리는 길게 끌리는 비단옷을 입는다 그것은 참으로 서글픈 광경이니 그러한 장식들이 오히려 그 여자들의 괴로울만큼 못생긴 얼굴을 더 강조할 뿐이기 때문이다.

조선 여자들은 대체로 아름답지가 않다. 나는 그들을 누구 못지않게 사랑하고 내 형제처럼 여기는 사람이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하여야겠다.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 질병, 애정의 결핍, 무지 그리고 흔히 수줍음 때문에 그들의 눈빛은 흐릿해졌고 얼굴은 까칠해 졌으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래서 스물다섯이 넘은 여자들에게서 아름다움 비슷한 걸 찾는 건 헛일이다. 다만 아직 무거운 걱정거리나 힘든 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나이 어린 소녀들과 젊은 부인들(색시) 중에는 종종 예쁘고 깜찍한 그리고 가끔 드믈기는 하나 아름답기도 한 활짝 핀 우아한 모습을 한 이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나인들은 그런 계층이 아니다. 거칠고 못생긴 그들의 모습은 다만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어 깜짝 놀랐다. 그들은 어린애와 같은 호기심으로 내가 입은 옷과 내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내가 몇 살인지, 아이가 있는지, 왜 혼인을 안했는지, 그 밖에도 무례하기 이를데 없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쉴 새 없이 퍼부어 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질문들은 모두 친절과 호의에서 나온 것들이엇다.

내가 조선 관리와 만난것은 이것이 처음이었고 이 일이 있은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기회가 생겼으니, 그것은 조선의 외무대신인 김윤식이 나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곡예를 구경시켜 준 일이었다. 초대받은 날짜는 그 다음 일요일이었는데 나는 우리들의 전통을 전혀 모르고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풀어 준 그에게 그런 날(주일)의 초대에는 응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 그의 기분이 몹시 상할 것이고 또 그가 오해를 할지도 몰라서 매우 난처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의 친절을 사양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적절한 설명을 붙여서 매우 미안하게 되었다는 뜻을 전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친절하게도 그는 날짜를 바꾸어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을 마음대로 데리고 와도 좋다는 ‘백지위임장’을 보내 왔다. 물론 나는 감리교 선교회의 여자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우리 병원과 관계가 있는 조선인 관리 몇 사람과 그밖에 다른 사람들도 그 관리의 초대를 받았다. 작은 탁자를 여러개 늘어 놓은 우리의 습관과는 달리 기다란 탁자 하나만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맛있는 조선 조선요리가 높이 쌓여 있었다. 닭고기, 꿩고기, 그밖에 다른 고기들이며 생선, 달걀, 땅콩, 과일 따위가 근사한 방식으로 차려져 있었고 과일과 과자를 중국식으로 절인것, 쌀을 빻아서 기름에 잘 버무려 만든 것으로 꼭 쿠타페르카 같이 생긴 ‘떡’이라고 하는 맛있는음식, ‘술’이라고 하는 토속 알코올성 음료, 그리고? 샴페인과 담배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뒤에 말한 세가지 음식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곡예를 보려고 거리에서 커다란 광장으로 밀려들었다. 그 곡예단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고용되는 유랑극단이었다. 그들의 공연 내용은 주로 줄타기와 재주넘기였는데 결코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 공연은 거의 세 시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줄곧 스코트랜드의 배파이프 소리와 같은 단조롭고 처량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조선말의 ‘앉아라’라는 동사를 배웠다. 우리고향 근처의 백인 아이들도 그렇듯이 자꾸 일어나서 보려고 하는 말 안듣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서 지르는 소리인 그 말을 아무튼 어조라든지, 시제라든지, 활용 어미 따위를 모조리 통달할 만큼 몇 천번은 들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언더우드 씨와 아펜쩰라 씨는 북쪽 지방으로 긴 순회설교를 떠났는데 그 여행은 언더우드 씨에겐 두 번째였다. 그들이 자리에 없는 동안 카톨릭교도에 대한 조선 임금과 내각의 분노가 극도에 이르러서 마침내 각 도시 안에서 외국종교를 더는 전파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우리는 시골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 전에 이미 중국에서 그와 비슷한 곤경을 치르고도 거기서 아무 교훈도 얻어내지 못한 카톨릭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언제나 중심지의 높은 장소를 좋아하는 습성에 따라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땅을 장차 자기들의 성당을 지을 부지로 삼겠다고 했다. 그 땅은 궁궐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서 옛 임금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아주 가가운 곳이었다. 조선인 중개업자의 중개로 이 땅은 임금도 모르는 사이에 카톨릭의 소유가 되었다. 그 중개업자는 신부들과 프랑스 공사관 양쪽에다 다른 땅을 골라 보라고 설득을 하는 따위의 온갖 애를 다 썼으나 그들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양보하지 않았고 마침내 자기들의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앞서 말한 법령이 뒤따랐고 미국 공사는 그 법령에 따라 할 수 없이 돌아온 우리들에게 선교사업을 철회하는게 좋겠다고 충고를, 아니 명령을 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려는 너무 성급한 시도가 이 기분 나쁜 법령이 있게된 까닭의 한 부분은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법령은 적어도 얼마동안은 우리의 일을 끝장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곧 언더우드 씨가 조선의 지체 높은 양반들과 각료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봉급을 넉넉하게 줄테니 정부가 설립한 학교를 밭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학생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쳐도 좋다는 허락을 간신히 얻어냈다.

틀림없이 불쾌감을 주고 의심만을 살 것이라고 한 외국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정부가 엄청난 자신감을 보여주었던 이 제의는 우리의 전도사업에 대한 조선인들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제의를 깊이 고려해 보았으나 마침내 다른 일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이유들로 거절하고 말았다.

우리들에게는 그 금령과 관련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우리들 가운데 몇몇은-거의 다 였는데- 그것은 지상의 법률이므로 기독교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일지라도 거기에 복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곧 학교에서 아침 기도를 올리는 것 조차 중단해야 하고 조선 사람들과 예배를 보아서도 안 되며 하나님께서 임금의 마음을 바꾸어 그 법령을 폐지하게 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하면 우리는 조선정부의 호의를 얻어 낼 수 있을것이나 그 반대로 도전을 한다거나 복종을 하지 않거나 하면 마침내 선교사업 전체가 이 나라에서 내쫓기고 말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곧 아펜젤러 씨와 지금은 주님 곁에 간 그의 부인과 언더우드 씨와 나는 그 법령이 우리들이나 우리의 일을 겨낭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 또 비록 그렇다 해도 우리는 조선임금의 명령보다는 더 높은 곳의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우리의 의무는 오직 사도에게 설교를 금지한 통치자에게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사도행전 4장 19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 번 판단해 보시오”라고 말씀하신 권능에 의지하여 전도하고 그 결과를 달게 받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이들은 전도사업을 중단했다.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자기의 양심에 따라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몇 사람은 작은 집에 모여 멀리에서도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공공연히 설교와 교육을 계속했다. 어떤 식으로나 우리의 행동을 감추려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았다. 예배에 참석하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 탈 없이 오갔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크게 자랐고 이제는 어떤 한 지방의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선? 문제로 인정 받았다. 이제 어떤식으로든 우리의 일을 위장하거나 감추거나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법령은 오늘에도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그대로 동양적인 전통에 맞는 일이다. 그 법령이 이미 사문화되고 쓸모 없이 되었어도 절대로 쉽사리 폐기하는 법이 없다.

내가 조선에 도착한 뒤 처음 몇 달 동안에 일어났던 또 다른 재미있는 사건은 이른바 어린애 소동으로 그 흥분이 절정에 이르렀었다. 그보다 몇 해 전에 중국의 천진에서도 그와 비슷한 소동이 있었으며 그 결과로 제수잇교의 신부들과 수녀들 그리고 프랑스 관리 몇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학살을 당하였다.

몹시 악의를 품은 몇몇 사람들이, 외국인들이 어린아이의 염통과 눈알을 도려내어 약에 쓰려고 원주민 어린아이를 훔쳐 오는 흉악한 조선인들에게 돈을 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 소문은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주로 일본인들이 그런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런 소문은 중국인들이 지어낸 것이거나 서울에 많이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특별히 적의를 품은 다른 누군가가 지어낸 것인 듯 했다. 언더우드 씨는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구하려고 일본공사에게 그 소문을 알렸다. 그리고 그가 재빠른 행동을 한 덕분에 조선 정부에서는 이미 인정된 일들은 그대로 허가한다는 것, 따라서 ‘치사한 외국인들’-이를테면 우리 미국인과유럽인들-의 일은 그냥 내버려 둘 것이며 그 문제에 이 외국인들은 결백하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흥분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커졌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중얼중얼 욕을 하면서 협박을 해 대는 폭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조선사람들은 행여나 남의 아이를 유괴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아 얻어맞기도 하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던 조선의 한 고급관리는 자기 주위에 시종과 하인이 잔뜩 있었는데도 가마에서 끌려내려왔다가 가까스로 도망을 쳐서 살았다. 외국인들이 길거리에 나서는 것은 위험한 일로 생각되었다. 외국 공사관을 지키려고 미국 해병대가 제물포에서 올라왔고 몇몇 미국인들은 당장 필요한 옷가지들과 귀중품들을 꾸려 항구로 도망칠 준비를 하기도 했다. 끔찍한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이를테면 독일 공사관과 영국 공사관 그리고 미국 공사관에서 어린애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이 피에 굶주린 작업의 총본부는 물론 병원인데 그것은 병원이 약을 만들고 병을 치료하는 곳이지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날 병원에서 돌아오자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내 가마를 둘러싸더니 가마꾼들에게 한 번만 더 나를 병원에 태워다 주면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소리였으므로 그 다음날에 가마꾼들은 나를 절대로 태워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타고 도시 한복판을 지나 병원으로 갔다. 학교를 책임맡고 있던 언더우드 씨가 나를 호위해 주었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 탈 없이 갔다 왔다. 그리고 나는 위험한 순간에는 대담하게 머리를 쳐들고 하나도 겁이 나지 않는다는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시아인들을 감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외국인을 크게 보호해 준다는 것을 그대부터 줄곧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동안 유럽 외교관들은 실제로 우리가 엄청난 위협을 받고 있으며 언제라도 우리의 이 작은 단체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었다. 외부에서 낸 성명서는 어디에나 붙어있었으나 이 글은 첫마디 부터가 오해하기 좋도록 되어 있었으니, 몇몇 ‘치사한 외국인들’이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외국인은 잡히기만 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는 글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이 ‘치사한 외국인’들의 압력에 따라서 새로운 공고가 나븥었는데 그것은 어떤 외국인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을뿐만 아니라 그런 중상모략을 떠들고 다니는 자는 누구라도 체포할 것이며 붙잡힌 뒤에 자기가 한 말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형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었다. 포졸들이 시내 곳곳에 흧어져 서너 명이 끼리끼리 모이는 걸 막았다. 잡혀간 사람도 더러 있었고 소동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안정이 있기 전에 우리는 불안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얼마동안을 좀 어수선하게 지냈었다. 흥분이 고조되던 어느날 저녁에 미국 공사관에서, 폭도들이 우리가 사는 집에 처들어가려 한다는 제보가 있으니 공사관에서 총을 쏘아 신호를 하면 신병의 안전을 위해 공사관으로 급히 피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별이 반짝이는 조용한 7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는 숙소 앞에 있는 자그마한 현관에 앉아 시원한 저녁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에 갑자기 지평선 저쪽에서 집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끔찍한 광경이 떠오르더니 폭도들의 무시무시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우리는 그곳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조선인 폭도들은 언제나 집에 불부터 지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를 생각하면서 불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미국 공사관에서 쏘는 날카로운 총소리가 밤하늘을 찢었다.

이로써 분명히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곧이어 총을 쏜 것은 돌발적인 사고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집이 불 탄 것도 우연한 사고일 뿐이며 함성도 불을 둘러싸고 군중들이 질러대는 흔히 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졌다. 아무튼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방인들의 광란은 가라앉았고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셨다. 피할 수 없을것만 같았던 위험은 지나가 버리고 모든 것이 다시 평온해졌다.

이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왕비를 간호해 달라는 대궐의 요청을 받았는데 행여나 내가 생각지 않은 실수를 해서 모처럼 잘 되어 나가던 우리의 선교사업이 지장을 받거나 중단되지 않을까 적이 염려가 되었다. 우리의 사업터전이란 것이 뭔지 아직은 불안한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에 전혀 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 실수가 자칫하면 이제야 겨우 억지로 열린 문을 닫게 하지 않을지 두려웠다. 나는 대궐에 갈 때에는 언제나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입으려고 준비했던 옷을 담은 상자를 찾아보니 태평양을 건너오는 동안에 상자며 옷이며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맙소사! 걸맞지 않은 옷을 차려 입고 왕족을 배알한다는 것은 곧 불경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이니 얼마나 불길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마에 얹혀서 터덜거리며 대궐을 향해 바람부는 거리와 골목길을 지나갈때에 이보다 더 큰 근심이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나는 왕비에게 종교적인 문제에는 단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주의를 받았다.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을 다만 묵인할 뿐입니다”하고 내게 그 주의를 준 사람은 말했다. “우리의 가르침을 백성들이 그냥 묵인하고 있다고 해서, 더구나 정부가 개방적이고 대담해지기도 전에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만일에 대궐에서 우리의 종교를 퍼뜨린다면, 우리의 가장 친한 벗들조차 우리가 왕족에게 접근하는 것을 단호히 막아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우리를 이 나라에서 몰아내야 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의 터전이 좀 더 튼튼해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조급하게 모험하지 마십시오.”

나는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으나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드시 나는 그 한가지 문제는 결코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고 대궐로 향했다.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의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디자인 이숲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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