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한국인의 정체성/2014년 2월>

서양인들이 본 개화기 조선과 조선인들(2)

펠릭스 클레르 리델(Felix Clair Ridel. 한국이름 이복명(李福明) 1830-1884)

리델은 1857년 사제 서품을 받고 1859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후 조선 선교지로 배속되어 1861년 3월에 조선으로 잠입하였다. 사목활동을 시작한지 5년째 되던 1866년 병인박해가 터지자 이를 피해 중국으로 피신해 있던중 1869년 6월 25일 조선교구의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877년에 다시 조선 선교지로 들어와 포교활동을 펼쳤으나 4개월 만에 잡입사실이 발각되어 서울 포조청에 투옥되었다가 5개월 뒤 석방과 함께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만주에 머물며 최초의 한국어 문법서인 <한어문전>과 <한불자전>을 완성시켜 출간하였다. 그는 선교사로, 조선 교구장으로 공한, 사한을 비롯해 방대한 양의 기록을 남겼으며 5개월 동안의 서울 포도청 감옥생활과 서울에서 의주를 거쳐 만주에서 중국에 인계되기 까지의 조선에서의 경험들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당시 그가 경험한 감옥생활에 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나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서울 감옥소에서 석방되어 조선정부의 호위를 받으며 만주까지 가는 동안에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였는데 당시 외국인이 본 조선의 모습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

-프랑스 선교사 리델의 19세기 조선체험기-

펠릭스 클레르 리델 지음,유소연 옮김(살림 간)

9. 만주를 향해 출발

드디어 곧 출발한다는 소식이 왔다. 포도청 마당에는 나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였다. 내가 보교 위에 올라 앉으니 포교들이 그 주위로 발을 빙 둘러 주어 길을 가는 내내 거리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배려해 주었고, 나는 마치 작은 방 안에 갇혀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두 교꾼이 보교를 들어 드디어 출발을 하였다. 보교의 문으로 사용되는 발 틈 사이로 우리가 가는 대로의 풍경을 내다볼 수 있었는데 그 길은 그야말로 까마득히 이어지는 장안 대로였다. 길 양쪽에는 초가지붕을 얹은 흙집들이 있었는데, 어찌나 작고 어찌나 낮은지 여우들이 사는 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행차가 지나가는 갓을 자주 보아 익숙해져 있는 지라 아무도 우리를 주시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성문밖으로 나갔고, 그때까지 동행하였던 포졸 여럿이 우리 일행 곁을 떠나 돌아갔다. 우리는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여 시골로 들어섰고, 거기서 잠시 걸음을 머추었다. 나는 잠간 보교에서 나와 우리 일행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소관 한명이 우리와 합류하고 있었는데, 사람들 말로는 그가 나를 국경까지 호송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포졸 둘은 첫 번째 역까지만 따라가기로 되어 있고, 포졸들은 역마다 차례차례 교체하기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말과 길 안내자들도 역시 교체한다고 하고, 교꾼 네 명은 국경까지 가기로 고용되었다고 한다. 모두 잠시 쉬고 나서 나는 다시 보교에 올랐고 우리 일행은 갈 길을 계속 갔다. 거의 들것에 가까운 이 작은 보교안에 계속 있으려니 꽤 불편하였다. 불편하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편안하게 묵상을 할 수 있었는데 묵상이야말로?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건강에 좋은 시골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지난 5개월 동안 감옥 안에서 들어마셨을 해롭고 역한 독기를 뿜어내고 폐를 청결할 수 있었다.

서울 근교의 풍광은 매력적이었다. 낮게 물결치듯 누운 작은 산들, 그 뒤로 보이는 높은 산들 그리고 그 높은 산들 중의 하나인 삼각산, 사방이 논밭이고 녹양이며 숲과 사람들이 공들여 보존하고 있는 거목들이 있었다. 우리는 암벽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섰는데 양쪽 암벽은 하늘을 찌를 듯 수직으로 자란 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 협로는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길이 그러하듯, 오로지 자연이 그저 혼자 관리하는 공도(公道)였다.

한낮이 되어 우리는 서울에서 40리 쯤 떨어진 작은 마을인 고양에 도착했다. 관장이 나를 보러 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주민 모두가 관아를 에워쌌다. 오후에 우리는 4리를 더 가서 파주에서 보교를 멈추었고 거기서 유숙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파주에 도착해서 활 쏘기 훈련을 하고 있는 아전들을 만났다. 그들이 모두 나를 보러 와서는 어찌나 할 얘기도 많고 묻는 것도 많은지 우리는 아주 늦게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보고 씻으라고 화강석으로 된 대야에 물을 담아 주었는데, 그 돌 그릇은 화병 모양으로 속이 움푹하였도 아래쪽에는 사용한 물을 흘려 보내도록 구멍 하나가 나 있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대야 앞으로 오면 그 옆에 물 한 동이가 있고, 대야 가장자리에는 입안과 치아를 닦아 낼 소금이 작은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으니, 조선인들은 매일 아침 이것을 빠트리지 않고 하였다.

아침 식사는 꽤 푸짐하게 나왔다. 식사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해 주는데, 식사만큼은 대접을 잘 받았다. 어디를 가나 먹을 음식이 수북했다. 관청의 식단을 보면? 일반적으로 밥 한 사발과 그 옆에 국 한 그릇이 놓이고 작은 반찬그릇들이 여러 개 올라와 있는데, 계란, 쇠고기, 돼지고기, 나물들, 배추김치 혹은 무김치, 고추장 그리고 무엇으로 조리를 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그밖의 여러 반찬들로 항상 푸짐하게 잘 짜여 있었다.

이날 나는 두 개의 커다란 석상을 보고 감탄하였다. 그 두 석상은 산허리에 수직으로 솟아나 있는 바위에 몸체를 새겨 조각한 것이었다. 그 석상을 조각한 예술가가 꽤 솜씨가 좋았는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석상들이 꽤 생동감 있고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굵은 윤곽으로 조각한 하나는 옛 조선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다른 석상 역시 거대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좀 더 동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말로는 그것이 어느 양반의 아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두 입상을 파주미륵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곧 파주지역에 있는 쌍석불상이라는 뜻이다. 이 두 석불입상의 조성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는 언제나 이 반도국을 코레라고 칭하는데 꼬레라는 이름이 바로 고려 왕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곧 임진요새에 도착하렸다.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이 요새는 요새의 이름을 딴 임진강이 흘러가는 것을 굽어보고 있었다. 높고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체가 서울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대형 정크도 지나갈 수 있을 이 강을 우리는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강 건너편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서 나는 한 거인을 보았다. 그는 돗자리 위에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고 심지어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무섭게 보이려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이 옆에는 긴 쇠 촉을 단 철창이, 그것도 마치 배의 돛대만큼이나 큰 철창이 놓여 있었으니 그를 보며 골리앗이 생각났다. 그 거인의 임무는 길목을 감시하고 임진통로를 방위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옛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송도 혹은 개성에서 유숙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금 더 가니까 과연 거리의 모든 풍경들이 우리가 유명한 곳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렸다. 커다란 능들, 오래된 비석들, 어마어마한 공사였으리라고 짐작되는 다리들, 이러한 유적은 옛 수도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었다. 지금도 송도는 조선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이다. 이곳 주민들은 상업적인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판이 나 있었고 또한 현재 권력을 쥐고있는 그들의 정복자, 조선 왕조를 경멸하고 있었다. 반면에 지금 왕조 사람들은 상업이나 거래에 관한 일들을 모두 천시하고 오로지 정부의 명예로운 관리들만 우러르며 또 시대를 막론하고 이 나라에서 항상 존경받아 온 농민들만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송도주민들은 조선 왕조에 경멸을 나타내고 있으니, 옛날의 미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수도가 다시 서울에서 자신들의 도시로 이전할 반가운 날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

송돌로 들어서서 우리는 이 상업 도시의 긴 거리를 따라갔는데 길 양쪽에는 조선에서 생산되는 각종 물품들과 온갖 유럽산 물건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유럽산 물건들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인데, 서해안 연안의 섬들로 장사를 하러 온 중국 선박을 통해서 입수된 것이거나, 매년 평양에서 변면까지 조선의 북경 사신 행차를 따라가는 수많은 수례들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

이 길에 있는 가옥들은 거의 전부가 상점이고 행인들도 모두 자기네 물건을 팔기 위해 각양각색의 음조로 노래를 하며 돌아다니는 상인들이거나 보부상들이었다. 우리는 이 길을 눈에 띄지 않게 잘 지나왔는데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소식이 퍼져 사방에서 구경꾼들이 몰려와 우리를 에워싸니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포졸들과 지방 군인들이 도착하여 웅성거리는 구경꾼들 사이로 우리가 지나갈 길을 열어 주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호기심은 있었지만 적의라고는 전혀 없었고, 주민들은 심지어 온순하고 조용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모두 차림새가 깨끗하였고 의복은 화려하기까지 하였다. 성벽 위에 앉아서 혹은 집집마다 대문 지붕 밑에 모여서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리들보다 더 신기한 것은 없었다. 알록달록한 가지각색의 옷들은 마치 꽃바구니를 생각나게 하였다. 아마도 이토록 화려한 옷 색깔로 매력을 풍기는 백성은 어느 나라에도 없을 듯한데 그것도 남자들과 아이들만 봐도 이러할진대 만일 여자들도 섞야 있었다면 어떠하였겠는가?

마침내 우리는 관사에 도착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용히 쉴 수 있을줄 알았다. 그랬더니 웬걸, 구경꾼들이 쇄도하여 순식간에 관사를 점령하였다. 나는 한 번, 두 번 밖으로 나가 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채워주었다. “저런, 저 사람도 우리와 또같은 사람이네, 소리 소문 없이 그저 지나가면 누가 저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겠어?”하며, 그들은 자기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내 옆에 제일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몹시 들어 보고 싶어서 내게 수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들은 특히 나보고 조선에 어떤 장사를 하려고 왔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단지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그 먼 여행을 하였으며 또 수많은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다는 나의 대답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김 대비의부음을 들은 것도 바로 이 도시에서였다. 내가 서울을 떠난 6월 11일, 같은 날에 김 대비가 서울에서 승하하셨다. 김? 대비는 현재 국왕의 직계 선대왕인 철종임금의 왕후(철종 왕후)이시다.

다음 날 우리는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경기도 땅을 벗어나 황해도로 들어섰다. 저녁 나절에는 돈여울 강을 건너 평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숙하였는데 이 마을의 관장은 나를 아주 극진히 대접하여 주었다.

나는 여행중에 관장 여러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내게 꽤 친절하게 굴었으나 거의 모두가 가식적으로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들 중 아직 젊어 보였던 한 관장은 내게 이성적인 질문을 많이 하였고 나의 대답을 유심히 귀기울여 들었다. 내게 내 준 큰 방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많은 청중들이 있는 가운데서 오랫동안 꽤 진지한 대화를 나우었다. 젊은 관장과 그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전까지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수많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황홀해하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 내가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그가 다시 찾아와 “이야기 듣는 게 어찌나 즐거웠는지 내가 다시 왔소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군요.” 하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갖추어 그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천주교의 주요 교리, 그 증거들, 윤리 등 천주교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다. 그들은 놀란 나머지 서로 입을 다물지 못하여 이야기하기를 “세상에! 저 사람들의 종교가 그런거였구나! 교리가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저 사람을 보시오. 의로운 사람이잖소.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도 모두 저 양인들과 똑같이 의로운 사람들이라니까요. 그도 그럴것이 천주교 교리는 신자들에게 화내지 말라, 싸우지 마라,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마라, 욕을 하지 마라, 굴 취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지 마라 하고 가르치니 말이오.” 한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자들이 최근에 붙들려 간 일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들이 대답하기를 “아니오. 우리마을에서는 신자를 체포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 마을에서는 없었지만 옆 마을에서는 여러 명이 붙들려 갔어요.” 한다.

몰려온 구경꾼들 중에는 관기(官妓)도 몇 명 있었는데, 방 안의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보고는 비켜 앉으며 길을 터주는 바람에 그 여자들이 제일 기까운 자리에서 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여자들을 쳐다보지도 않자 남자들이 나보고 “저 여자들 좀 봐 주시오. 당신을 보려고 온 사람들이잖소!” 하였다. 나는 “아니오. 쳐다보고 싶지 않아요. 저 여자들은 이곳에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지혜가 있고 정숙한 여자들이라면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네들 같으면 당신네 처와 딸들이 남자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남자들과 외국인만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도록 놔두겠습니까?”하고 되 물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리고 제일 분별있는 남자들이 돌아앉으며 그 여자들에게 “나가시오! 다들 나가시오!” 하자 그 불쌍한 여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그들이 내게 물었다. “서양 여자들도 조선 여자들 만큼 예쁩니까?”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는 것으로 그쳤다. “모든 덕을 갖춘 여자는 항상 아름답지요. 반면에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여자라 해도 덕을 갖추지 못하였으면 추한 법입니다.” 관장은 대단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참으로 훌륭하고 심오한 말씀이오!” 하면서 나의 답변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나는 그날 이후 비신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숙지하였는지 말해 주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 다음 날 내가 다른 지역에 갔을 때 그 지역의 한 아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오. 누구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소! 어제 이 사람이 어떤 지역에서 유숙하였는데 그때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옷차림에 온갖치장을 한 기생들을 앞에 데려다 놓았더니, 글쎄 믿겠소? 이 사람이 기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단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답니다. 일말의 의심의 여지도 없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 이 사람은 군자요. 참으로 훌륭한 위인이오!” 사실 모든 관청에서 이 가련한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예능을 골고루 익히고 사교계에 맞추어 형성된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예의가 바르고 어떤 여자들은 겉보기에 지극히 겸손해 보였으며 의복도 단정하였다. 그중 하나는 12-14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흰 모슬린 천으로 만든 질질 끌리는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같은 천으로 된 긴 베일을 쓰고 있었다. 첫 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 여자아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순교자들에 대한 조사중에서 이 아이와 같은 증거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1868년, 서울에서 신자들을 대거 처형할 무렵에 한 기생이 박해 소식을 듣고는 천주교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리고 교리를 배우고 나서 “나도 천주교를 따르겠어요. 나도 신자가 되고 싶어요. 이 교리는 참으로 훌륭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녀는 결국 체포되었고, 며칠 뒤에 체형되었다.

우리는 갈 길을 계속 갔다. 어디를 가든지 산이 있고, 그중 몇몇 산은 숲이 몹시 우거졌다. 골짜기에는 비옥한 전답이 많고 여기저기에? 마을이 있으며 작은 촌락의 집들은 모두 닮아 있었다. 우리가 따라가는 큰 도로에는 중계 역도 촘촘이 있었고, 여행객을 위한 주막들도 꽤 가까운 간격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멀 때는 교꾼들에게 잠시 쉬거나 식사를 할 정도 시간을 잠깐씩 주었을 뿐 주막에서 멈춘 적은 전혀 없었다. 봉산을 지나고 나서 우리는 산 하나를 만났는데 산길을 따라 빙빙 돌아서 산 정상에 닿았다. 그곳은 너무 위험해서 여행객 두 세명 정도로는 감히 들어 설 만한 곳이 못되었다. 그래서 여행객들은 그 산의 주인이며 그 산의 왕인 호랑이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무리를 지었다. 그 동네 어느 집을 가도 집집마다 호랑이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이야기가 그치지 않고 들렸는데, 그곳에서 횡행하는 호랑이들 때문에 많은 주민과 여행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산 밑에서 여러 명의 여행객이 우리와 합류하니 산을 넘기에 충분한 인원이 되었다. 산 정상에는 주막으로 사용되는 작은 집 한 채와 호랑이 신령에게 바치는 작은 탑이 하나 있었다. 나는 한 남자가 탑으로 다가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두 손을 비벼 가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행객 모두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씩 빌어 주었고 나를 위해서도 빌었는데 “복명이가 이 산을 무사히 넘도록 해 주시고, 그를 호랑이에게서 보호해 주시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오! 여행자들의 보호자시여,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하며 비는 소리를 듣고는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온갖종류의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 속에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중 소나무와 전나무는 상당히 높이 솟아 있었다. 숲은 점점 더 울창해지고 잡목림으로 더욱 무성해 졌는데, 온갖 종류의 나무들과 소관목과 풀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자라고 있는지! 그런데 바로 이곳이야말로 호랑이가 숨어있는 장소일 것이니 호랑이가 바로 곁에 숨어 있다 해도 사람들 눈에 띠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마법의 나라 속을 한참이나 여행하고서 아무런 사고 없이 숲을 벗어났다.

나는 내리막길 내내 걸어서 내려왔는데, 약간의 운동으로 몸을 회복시킬 겸 안쓰러운 교꾼들을 좀 쉬게 할 겸 해서 여행중에 되도록이면 자주 걷곤 하엿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을 떠나 올 때 포도청에서 갓 하나를 주지 않아 나는 갓을 쓰고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여행 내내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질문을 받았다. 왜냐하면 평소에 사람들은 갓을 쓰지 않고 외출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일종의 일사병 같은 것에 걸려 나중에 후유증으로 두통을 심하게 겪었고, 이질을 않기도 하였다. 가장 피곤한 일은 저녁에 내가 유숙하는 방에 사람들이 가득 몰려와 있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여행한 끝에 유숙지에 도착하면 쉬기는커녕 사람들 무리에 시달렸는데, 그들이 밤 늦게까지 방에서 나가지를 않으니 충분히 쉴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불만을 토로해도 소용이 없었고, 나를 호송하는 관리가 아무리 애를 쓰며 방문객들을 제지해도 그들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내가 앓는 것을 보고 관리는 겁을 먹었다. 그리고 나에게 “나도 의술을 좀 알아요. 내가 약을 주리다.” 하였다. 나는 실제로 탕약 두 그릇을 마셨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어서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날을 앓아야 했다.

6월 16일 일요일, 평안도로 들어가서 첫 번째 마을인 중화에 도착하였으니 서울을 떠나 500리 길을 온 것이다. 이 지방의 말은 서울말이나 조선의 북쪽 지역의 말과는 조금 다르다. 다음 날 우리는 평안도의 수부인 평양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평양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도시로서 대동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강은 항해가 가능한 강이라 서울의 대형 선박들이 와서 이 도시의 성벽 밑에다 화물을 부린다.

평양 사람들은 다혈질이고 시끄러우며 대담하다. 강여울에 걸려 꼼짝 목 하고 있는 미국의 소형 스쿠너 선박 제네랄 서먼 호를 불태우고 그 배의 승무원들을 모두 학살한 것이 바로 그들이며, 강화도의 프랑시인들을 내쫓겠다고 나선 것도 그들이다. 평양에서의 상업 활동은 규모가 크고 활발하며 도시는 항상 역동적이다.

산으로 이리저리 꺾여있는 긴 평야를 쉬지않고 달린 끝에 우리는 대동강 강변에 도착하였고, 길고 납작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강 반대편에 닿았고 두껍고 어두운 문을 가로질러 성내로 들어갔다.

내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었을 때는 사방에서 달려오는 사람들 소리가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몰려오는 소리 같더니, 금세 어찌나 빽빽하게 사람들이 몰렸들었는지 교꾼들이 앞으로 더 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방에서 “그 사람을 봐야만 하오. 좀 봅시다.”,”가마에 둘러친 발을 올리시오!” 하는 외침이 들리더니 어느새 가마의 발이 들어 올려졌고 군중들은 나를 보려고 점점 더 바짝바짝 다가왔다. 나를 호송하는 관리가 고함을 쳤으나 그의 고함이 소란을 잠재우지는 못하였다. 교꾼들은 온 힘을 다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애를 썼고, 포졸들은 우리에게 길을 터 주려고 사방에 대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급기야 나를 감영으로 데려갔으나 군중들은 거기까지 몰려들었고, 다른 장소로 옮겨가도 모두들 나를 보기 원하니 역시 똑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이 전쟁이 족히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되니, 하는 수 없이 나는 컴컴한 외딴 방에 갇혀 있어야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도 사람들에게 포위를 당하였다.

“어째서 그자를 돌려보내는 거냐? 그자를 처형시켰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조정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이제 서울에는 용기 있는 자들이 없는 게로군! 그자를 여기서라도 죽여야 해.”

“무슨 소린가. 그자를 돌려보내라는 건 천자의 명이라네. 심지어 천자께서 그자를 잘 모시라는 명령도 내렸다네. 그자는 자기네 나라나 중국에서 명성이 높은 인물인 모양이야. 대인인 모양일세.”

“그래? 중국황제의 명령이라구?”

“글쎄 그렇다니까. 황제가 그자를 돌려보내라고 특사를 보냈다니까.”

이말에 소란스러움이 다소 누그러지니, 조선에서 중국 황제의 위력이 이 정도였다. 중국 황제라는 한 마디가 모든 걸 잠재우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포졸들 역시 정부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는 분명한 명을 받았기에 군중들의 소란을 잠재우는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 도시에서는 포졸들과 정부 관리들이 제일 드셌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주민들은 유순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냈는데 나를 호송하는 관리가 앞서 언급하였던 김 대비 국상에 맞추어 이곳에서 상복으로 갖춰 입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저녁 나절은 훨씬 조용하게 지나갔다. 여러사람이 나를 보러 왔지만 모두들 질서를 지켰다. 다음 날 거리에 나서니 또 인파가 몰려들었다. 우리 관리가 어느 관청엔가 가서 상례를 마치고 나서 드디어 11시 쯤에야 우리는 도시를 벗어났다. 잠시 후에 우리는 대로로 들어섰다. 평양에서 중국 국경까지 이어지는 이 대로에는 우차(牛車)들의 통행이 빈번했는데 조선에서 보기드문 일이었다. 이 우차들은 덩치가 아주 크고 조잡하게 만들어졌는데 수레를 아에 멍에에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소를 눕혀 그것을 소의 목에 걸기만 하면 되므로 다른 마구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정부에 속해 있는 역졸들과 종종 마주쳤는데 그들은 서울과 국경 사이를 왕래하며 통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역졸들은 작은 말을 타고 다녔다. 말에는 안장도 없이 작은 방석이 하나 얹혀져 있고 그 양쪽으로 볏짚을 꼬아 엮은 띠에 역시 짚으로 된 등자를 달아 늘어뜨린게 고작이었으나 언제나 쉬지 않고 달려 족히 천 리 길을 사흘만에 질주한다.

조선의 소들은 품종이 우수하여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대체적으로 잘 먹여 키운다. 반면에 말들은 키가 작지만 끈기가 있어 쉽게 지치지 않는다. 심지어는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아주 막은 말들도 있는데 그런 말들은 당나귀 새끼보다 크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80리 정도를 갔으나 때로는 100리, 한 번은 120리까지도 간 적이 있다. 짐을 실은 말들을 행렬 맨 앞에 세웠는데, 말 위에 실은 궤짝들이 오른쪽 왼쪽으로 기울어지며 떨어질 듯하여 그것을 바로 잡아 놓느라 종종 가던 길을 멈춰야 했다.

하루는 하천을 만나 건너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리라고는 하천바닥뿐이고 다른 다리가 없어 물속을 걸어서 건너야 되었는데 그때 말 한필이 넘어졌다. 그 말을 끌고 가던 아이는 너무 약해서 궤짝을 붙들 수도 말을 일으켜 세울수도 없었다. 아이는 겁을 먹고 엉엉 울면서 떨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말과 짐짝들이 떠내려간 다음에 받을 매질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을 터이고 당장 자기도 하천의 급물살에 떠내려갈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데 그 아이의 짝은 강 저쪽으로 혼자 건너가서 도와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제 친구가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바라만 보며 미련하게 웃고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교꾼 한명이 가마 끈을 풀어 달려가서 말을 일으켜 세워 강가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궤짝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모두들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궤짝을 여니, 그 진귀한 물건들 구경 좀 하자 싶은 반가운 마음에 궤짝 앞으로 바짝 다가온다. 잠시 후 모두들 놀라는 기색이란! 궤짝 안에는 서양 책 몇 권, 제의(祭衣)를 비롯해 조선사람에게는 값어치도 없는, 필요도 없는 물건들뿐이었으니까. 그들은 “저 사람은 정말이지 우리나라에서 돈도 못벌었구나.”하고 말하였다. 결국 나로서는 그날의 사고가 오해를 풀어준 셈이 되었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내 궤짝에 들어 있는 내용들을 두고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물건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채 궤짝 안에 스며들었던 물이 쉽사리 빠져나갔다.

짐을 다시 정리한 후 교꾼 두 명이 보교를 들고 왔는데 교꾼 네 명중 다른 두 명은 힘들어하는 다른 일행에게 힘 좋은 자기네 일손을 보태주러 갔기 때문이다. 보교 위에 앉아 교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가 아주 수월하였는데, 항상 명랑한 그들은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 오기도 하였고 또 갖가지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보통 포졸들도 대화에 끼어들었는데 그렇게해서 여행의 지루함을 덜기도 하였다.

호송 관리는 맨 뒤에서 작은 말을 타고 오면서 행렬을 감독하였다. 처음에는 차갑고 과묵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얼굴 표정이 밝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화의 내용을 들을 수 없었던 그는 간혹 교꾼들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들으면 “주교가 뭐라고 하였기에 웃나?”하고 꼬박꼬박 물었다. 그러면 교꾼 한 명이 보교에서 손을 놓고 관리에게 가서 방금 나누었던 이야기를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전하였고 그러면 다시 다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관리의 말타는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리를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조금 지나서 다시 묻기를 내가 말을 차고 자기가 보교를 타고 가도 정말 괜찮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선의 작은 말 위에 오르니 나는 마치 정부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이나라의 관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고, 교꾼들은 “양인이 말을 타니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해서 구경꾼들도 훨씬 적다”라고 말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피곤해 보이는 관리에게 오랫동안 보교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어는 정도 가다 보니 나도 아파서 보교를 더 양보할 수 없게 되었다.

 

교꾼들은 북경에도 다녀온 적이 있고 여러차례 여행을 하였던지라 이 길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내게 귀뜸해 주기를, 우리가 안주와 의주에 들어서면 평양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중들 때문에 똑같은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예상하였던 일은 어김없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충분히 이야기하였으므로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

안주는 청천강 가까이에 있는 대도시이다. 안주는 4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박천이라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남쪽 지방에서 오는 대형선박들이 화물을 내려놓는 곳이다. 박천은 하천 바닥이 진흙이라 우리가 건너는 데 꽤나 고생하였던 진두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가산에서는 높은 산이 시작된다. 한쪽이 직각으로 깎겨 있는 이 산은 30리 떨어진 의주까지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이 샛별령이라 부른다. 우리는 요새화된 도시인 정주를 지나 곽산으로 가서 거기서 하룻밤을 유숙하였다. 국경에 가까워지면서 요새의 수는 훨씬 많아졌고 도시마다 온통 성벽들이 쌓여 있었다. 동쪽과 서쪽에 있는 동림과 서림, 이 두 요새만 소개한다면, 둘 다 통행이 어려운 산 위에 위치하고 있으면 요새에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두 요새는 높고 견고하게 벽을 쌓아 축조하였는데 반원형의 요새 문들은 아주 큰 돌들을 쌓아 만들었고 거목들이 들어차 있는 거대한 삼림이 사방으로 그것들을 에워싸고 있다. 우리가 이 지역을 통과할 때 소문이 하나 돌 고 있었다. 관리들은 마치 그것이 확실한 소식인 듯이 우리에게 전해 주었는데 동해안 연안의 원산항에 전함들이 출몰하고 있으며 조선이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전함이 일본 전함이라고 말하였다. 주민들 모두가 혹시 전쟁소식이 들려오지나 않을까 하며 매 순간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내가 겪은 아주 기이한 어떤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느날 나는 걸어서 산을 올라가고 교꾼들이 보교를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관리는 조금 떨어져서 뒤에 천천 히 올라오고 있었다. 산정상에 이르러서 잠시 쉬기로 하고는 나는 대로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절간의 조각상을 살펴보러 갔고 교꾼들은 땀을 식히러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작은 집에서 백발의 노인이 나오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아니, 그분이 여기 계시다니. 내가 그토록 오래전부터 뵙기를 원하얐던 성인이 아니신가!”

그리고는 노인의 다리로 달릴 수 있는 최고의 빠르기로 나를 향해 달려와 나를 부등켜안고는 내 손을 꽉 잡고 다시 외쳤다.

“오! 당신에 대해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요! 이토록 크나큰 복이 내 생의 말년에 찾아올 줄이야.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교리를 가르치러 오기 위해 기족, 친지 모두의 곁을 떠나, 수많은 고생과 수많은 노고를 마다하지 않은 저 거룩하신 분들 중의 한 분의 얼굴을 일찍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성인들이시며, 나는 성인 한 분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러한 서두에 깜짝 놀랐고 그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노인의 손을 정답게 꼭 쥐었다. 노인은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교꾼들을 향해 몸을 돌려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분이 안 계신고로, 이분이 우리에게 교리를 가르치러 우리나라에 오신 것이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러 왔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오. 이분들의 목적은 오로지 우리에게 훌륭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오. 그런데 우리 조선인들은 이분들을 학대하고, 서울에서는 이분들을 잡아다가 죽이고 하였으니 오직 우리의 선익만을 원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으니 우리나라는 얼마나 딱한 나라입니까? 이렇게 분한 일이 어디 있으며, 이렇게 부당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분들은 그 누구에게도 악한 일을 한적이 결코 없고, 모든 덕목을 갖춘 분들인데. 아! 우리의 조정은 얼마나 잔혹하고 얼마나 눈이 멀었습니까!”

교꾼들은 입을 딱 벌리고 노인을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맞소이다”라고 하는듯이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진도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살면서 예전에 유럽인 수도승들을 본 적이 있으며, 몇 해 전에 이 지방으로 이주해 와서 살고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이는 72세이고 천주교를 알고싶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독려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전하는 교리는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교리요. 이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도록 가르쳐 주고, 그분을 공경하도록 가르쳐 주며,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가르쳐 주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 줍니다. 내가 당신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는 없으나 찾아보시면 교리를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터이니 그 사람들이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는 자유인이 아니오. 정부에서 나의 전교활동을 금하고 나를 이나라에서 추방하였으니 내가 하고 싶어 하였던 선한 일을 하지도 못한 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저런! 우리나라로서는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있는 사람을 조정에서 이렇게 몰아내다니. 그러니 이 무슨 광기랍니까!”

그리고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저의 집으로 잠시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시는 것만해도 저나 제 가족에게는 축복일 것입니다. 제게 술이 조금 있으니 목이라도 축이십시오.”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며 또 관리가 저기 오고 있으니, 혹시라도 나로 인해 당신에게 해가 돌아갈까 염려스럽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십시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만났고, 수많은 마음 아픈 일들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중에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위로를 받았으니 나는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며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교리를 가르쳐 줄 신자들을 찾도록 노력하십시오.”

관리가 왔고 나는 노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뒤돌아섰다. 노인은 멀어지는 나를 보면서도 나에게 대한 칭송을 그칠 줄 몰랐으니, 비록 그가 나를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닐지라도 오래전부터 천주교와 우리의 동료 선교사들과 우리의 순교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만남은 내가 받은 고통에 많은 위로가 되었으면서 또한 슬픔을 증폭시켰으니, 왜냐하면 마음의 준비가 저토록 잘된 영혼들이 많은 이 나라를 떠나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였던가! 위험을 무릎쓰고, 체면도 벗어던지고, 이렇게 그리스도교를 고백하던 저 가련한 사람을 나는 얼마나 입교시키고 싶었던가! 나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만났던가! 모두들 나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였고 나에게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 번도 유럽인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이미 오래전에 조선의 연안에서 해앙사고를 당하였다가 중국으로 송환된 한 유럽인이 나와 똑같은 길을 통해 갔다고 하는데 그를 직접 본 사람들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럽인이 조선어를 알아듣지 못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어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이동경로 중에 신자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혹시 내가 신자들을 만났는데, 군중 속에 파묻혀 있는 그들을 분간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르며 또 신자들도 조심하느라 신자라는 표시를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근 지역에 신자 마을이 여럿 있었으므로 나는 높은 산들을 주시하였다. 그곳에 우리의 신학생 양성소가 있었고 또 로베르 신부가 그곳에 있을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구월산 높은 봉우리를 보면서는 두세 신부가 그곳에 숨어 있을것이라는 짐작을 해 보았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면서 아직은 아주 젊은 나이에 수많은 고초와 궁핍과 위험과 노고에 처해있는 이 사랑스럽고 훌륭한 선교사들에게 강복을 보냈다.

선천과 철산을 지나 용천에 도착해서 중국어 통역사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와 합류하기 위해 이곳에 사흘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나를 만나러 온 그들은 중국까지 나와 동행하여 중국 관헌들에게 나를 넘겨주기 위해서 조선 정부가 파견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동지사들을 따라 중국을 내왕하므로 북경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내가 피로에 지쳐있는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모든 사람들을 물러가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쉴수가 있었다. 조선 영토에서 마지막으로 지나게 될 도시인 의주까지는 90리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출발하였고 우리의 행렬식구는 더 늘어나 있었다. 저녁 나절, 산꼭대기에 이르니 조선과 중국의 국경으로 흐르는 강이 보였고 중국땅과 중국의 산들이 뚜렸하게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의주 가까이에 도착하였다.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작은 소동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우리는 가능한한 쉽고 좀 더 민첩하게 이 큰 도시를 통과하여 반대쪽 끝에 위치한 관청으로 들어갈 만반의 조치를 취하였다. 우리는 아주 조용하게 성문 안으로 들어섰지만 곧 내 모습이 노출되었고 사람들이 몰려들며 고함을 질러 댔다. 30명이 넘는 포교들이 인파를 진압하느라 온 힘을 쏟았다. 급기야는 우리가 들어간 관사 또한 인파에 포위를 당하고 말았으니 이렇게 소란스러운 광경을 보면서 거의 1시간이나 지속되는 요란한 소리를 듣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굵직한 직함의 관리들이 모두 나를 방문하였다. 현지의 관장이 친히 나와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는 조선인들은 재미있는 백성인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지라 별것도 아닌 일에 대단한 호기심을 보이며 단순한 행차 하나에 온 주민이 동요한다고 하면서, 내게 길에서 많이 고생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우리들도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시달립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나는 “모든 나라 백성들이 거의 다 그렇지요. 특히 조선에서는 유럽인들을 볼 기회가 자주 있는게 아니니까요”라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그가 다시 말을 받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지요, 모든 나라 백성들이 다 이렇지는 않습니다. 유독 우리 조선인들만 이렇게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도 국경에 가면 행렬이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곳 주민들은 조용합니다. 우리의 행렬을 쳐다는 보지만 훨씬 조용하게 쳐다보고, 달려들거나 우리를 귀찮게하지는 않지요! 아! 우리 백성들은 참으로 예의범절이 없어요! 그 나쁜 습성이 이나라 백성의 몸에 배어 있고, 그게 그 사람들의 기질입니다.”

이윽고 우리는 산등성이 한쪽 측면에 자리잡고 있는 큰 읍내인 의주에 도착하였다. 의주는 한쪽으로는 키 큰 소나무가 울창한 산들이 읍을 지켜주고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중국말로 얄루강 또는 청록오리강이라 불리는 압록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바로 이 도시에서 우리 통신원들이 체포되었는데, 이 세 명의 신자가 아직 이곳의 감옥에 있을 것이다. 나를 어느정도 신뢰하는 한 통역관을 통해서 알아보니 그들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나보고 여기서 며칠 쉬었다 가지 않겠느냐고 묻기에, 나는 기왕 길을 나섰으니 중단하지 말고 계속 가는것이 더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나를 조선에 남게 해 주고, 내가 이곳에 정착하여 교리를 전파할 수 있게 해 준다면 모를까요”하고 덧붙였더니 그는 “그렇다면 내일 당장 떠날 준비를 하지요”하고 말하였다.

다음 날, 서울부터 나를 호송한 관리는 자신의 이무가 끝나 나와 작별하였다. 나는 그에게 여기까지 오는 여정 내내 내게 베풀어 주었던 모든 배려에 감사를 전하였고 우리는 서로 축복을 빌어주며 좋은 벗으로 작별하였다. 다음날 의주 부윤이 내게 와서 간밤에 잘 잤느냐는 문안 인사와 잘 가라는 작별인사를 하였는데 그의 인사는 어느정도 과장된 데가 있기는 하였으나 또한 순박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화평과 번창을 기원해 주면서 이 도시를 거쳐간 것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며 또 조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부윤은 “좋소, 좋소.” 하더니 나를 호송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노중에 이분을 잘 모시고 가라. 강을 건널 때 각별히 주의를 하고, 이분께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도록 해 드리라”하고 당부하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과분한 친절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극진한 대우를 받아서 나를 호송해 준 이들에 대해 불평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그분들에게 감사할 뿐이고 또 조선 정부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내게 베풀어 주신 이 호의로 나는 천만 번 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니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와 나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 나라 백성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회한이 더욱 커질뿐입니다. 부디 언젠가 조선 정부가 우리에게 조선입국을 허락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반갑게 다시 달려오겠습니다.”

부윤은 웃기 시작하였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참으로 선량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였다.

길을 나서자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는지 전날처럼 군중들이 밀집하여 있었다. 내가 보니 무장한 포졸들이 군중을 해산시키려는 사명감에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나를 호위하는 관리에게 다급하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러 온 것이니 그냥 놔두시오. 제발 포졸들이 사람들을 때리지 못하게 해 주시오. 우리야 어떻게든 천천히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관리가 외첬다.

“때리지는 마라. 양인이 사람을 때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를 에워싼 군중들 사이를 그렇게 무사히 지나서 강변을 통과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납작한 큰 배에 올랐다. 모래사장에 늘어서 있는 저 모든 군중들과, 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우리 배를 에워싸고 흰 이를 드러내며 다정한 미소를 짓고있는 저 아이들. 그것은 신비한 광경이었다. 또 다른이들은 숲의 거목을 잘라서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카누 속으로 뛰어들어 고요하고 평화롭게 흐르는 이 아름다운 강 위를 우아하고 유연하게 노를 저어 갔다. 저 사람들이 모두 내 백성이고 내 자녀들인데, 우리 주님께서 교황 비오 9세를 통해서 내게 맡기신 백성인데, 나는 그들을 버리고 가는구나!

우리는 무사히 강을 건너 첫 번째 섬에 닿았다. 그 섬 한쪽에서는 대형 조선 선박들이 오르내리고 있었고 섬의 다른 쪽 즉 같은 강의 다른 지류쪽으로는 수없이 많은 중국 배들의 돛이 강 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뭍으로 올라온 나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 이 아름다운 조선, 나의 사랑하는 포교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인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경인가! 그것은 마치 어쩔 수 없이 작별해야 하는 나에게 보내는 조선의 미소와도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선을 포용하며 “잘 있거라! 곧 다시 보자!”하며 조선을 향해 가장 다정한 강복을 주었다.

이 섬을 지나니 섬 하나가 더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강의 세 지류를 지나게 된 셈이다. 두 번째 섬에는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인들도 중국 영토인 그곳으로 매일 통행하고 지나다니며 땔감을 구하기도 하고 산에서 자라는 키 큰 풀들을 베어가기도 한다.

<나의 서울 감옥생화 1878-프랑스 선교사 리델의 19세기 조선체험기>유소연 옮김 살림 출간- 에서.